일상의 상념
일상의 상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복언, 시인·수필가

잔잔한 물결이 오가는 것처럼 일상이 펼쳐지다가도 예상치 못한 파도가 일기도 한다. 그게 삶인 줄 알면서도 그럴 땐 당혹스럽다.

며칠 전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왠지 목에 통증이 일며 편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까운 정형외과에 들러 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목뼈 간격이 좁아졌다고 한다. 목디스크 초기 단계라며 높은 베개를 사용하지 말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며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족집게처럼 지적한 두 가지 사항과 동행한 지가 오래다.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 화면에서 인터넷을 누비고 자판을 두드리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바른 자세에서 이탈하며 서서히 거북목을 자초하는 셈이다. 덜컥 자각할 때 내딛는 첫발, 그 힘을 믿는다. 고쳐야겠다.

지지난 토요일엔 문인협회 회원들과 선흘리 동백동산을 탐방했다. 얼른 행사 참석을 신청한 이유는 여태 그곳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행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곶자왈 탐방로를 걸었다. 그곳 사람들이 못과 습지를 이용하고 숯을 구우며 억세게 살았던 과거가 어른거렸고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출몰했지만, 빈약한 나의 청력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대신 나는 침묵의 언어와 소통하며 나무들의 모습을 살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체의 첫째 사명이라는 듯, 저마다 햇빛을 받기 위해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고 있었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지표면의 돌덩이를 움켜쥔 뿌리들의 근육질이었다. 궁하면 길이 열리는 걸까.

마음의 찌꺼기를 태우는 천연림의 비결이 신비롭다. 자연 앞에 왜소해지는 인간의 한계 같은 것, 그로 인해 겸손한 마음에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시원의 숨결을 맘껏 누리지 못하고, 온 신경을 왼쪽 눈에 모아야 했다. 통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지인의 실수로 실명한 눈, 나의 자존감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콤플렉스의 근원지가 요즘 더욱 아우성친다. 시력의 불편이야 감수할 수 있지만 부연 눈동자를 거울에서 마주치면 하릴없이 운명을 저주하게 된다. 미관을 위해 외출할 때면 홍채렌즈를 착용하는데 근래에 눈동자가 작아졌는지 렌즈가 맞지 않아 금세 아리고 붉게 핏줄이 선다. 역경을 극복하느냐 역경에 굴복하느냐, 그게 문제이다.

노인들의 공통된 화재는 단연 건강이다. 오래 살기보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노력 없이 시부저기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삼사십 분 동네를 걷는 게 어설픈 나의 건강관리다.

얼마 전엔 산책길 네거리의 한 모퉁이에 물이 번져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수도관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사흘쯤 지나도 그대로여서 시청 상하수도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저녁에 지날 때는 젖었던 곳이 말라 있었다. 아스콘 도로를 파헤치고 문제를 해결한 후 부직포가 덮여 있었다. 담당자의 신속한 처리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 전화했으리라 생각하고 미적댄 나, 공동책임은 무책임이란 말을 되짚는다.

당연시하던 심신의 기능이 세월 따라 하나둘 곁을 떠나며 상실에도 웃는 힘을 기르라 한다. 너덜너덜한 삶을 되돌아보며 하루하루를 기적의 선물로 맞는다. 궁극을 향해 건너야 할 일상의 징검다리이므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