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게 보이는 법이니 좌절 금지
보고 싶은 게 보이는 법이니 좌절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교수님,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이 있을까요?”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럽다. “필요”는 가치, “세상, 있다, 없다”는 존재, 물음표로 생략된 “생각하시나요?”는 인식과 관련된 개념이라 그렇다. 흔히 서양철학은 이 세 가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결코 우문(愚問)이 아니다. TV 드라마 제목에서 차용되었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세익스피어의 명언대로라면, 이 복잡한 생각은 “모든 학문의 왕”인 철학을 전공하는 대가다. 하기는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는 게 병”이라니, 직업병이다.

업무회의를 겸한 식사 자리에서 가벼운 대화가 오가다가 조금은 심각한 업무 이야기가 나오자 건너편에 자리한 위원께서 던진 질문이다. 화제를 바꿀 요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있는 것들은 모두 필요한 것이겠지요마는”이라고 질문을 재배열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화제가 바뀌지 않았으므로 “현문우답”이 되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육하원칙에 따라 필요의 주체와 대상, 있고 없음의 양상과 확실성, 생각과 인식, 판단의 논리적 구성과 정당화 등을 이야기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그럴 자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없는 것”이다. 이미 있는 것도 더 필요한 때가 있지만, 아무래도 없는 것에는 못 미친다. 그래서 대개는 “있는 것”을 홀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늘 이미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아직은 가지지 못해서 “없는” 것을 더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결국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그것을 “바라는 사람”, 그렇게 해서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사람”인 “나”에게로 수렴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다.

“바라는 게 없으면 세세한 차이[妙]를 볼 수 있고, 바라는 게 있으면 바라는 것[?]을 보는 법이다. 이 둘은 같은 데서 나온 것인데 달리 부르는 것이니, 함께 부를 때는 ‘가물거린다[玄]’라고 한다. 가물거리고 또 가물거리니 모든 세세한 차이가 여기에서 시작한다[衆妙之門].” 도덕경 1장은 “바라는 게 없어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라는 교훈으로 끝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나와 그렇지 못한 나는 같으면서도 세세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미 가진 “있는 그대로”인 것이라고 말한다.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쓴 <파랑새>는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은 집으로 돌아와서야 바라던 파랑새를 발견한다. 집을 떠나기 전후의 틸틸과 미틸, 그리고 파랑새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세세하게 다르다”, 곧 묘(妙)하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를 바란다. 도덕경은 그런 바람을 변명거리로 삼아 좌절할 준비가 된 우리를 응원한다. 우리가 가진 세세한 차이가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니 “좌절 금지”라고 말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