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우리 것을 먼저 존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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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얼마 전 시조를 쓴다는 말에 시조요? 시조시인이세요?”하며 한 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를 옛것으로만 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시조집 한권을 건네며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시키려 했지만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돌아서며 우리 것, 우리 것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 해봤다.

올 들어 송당마을의 신과세제를 보러갔다. 나이 듦인지 터부시했던 굿판이 언제부턴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본향당신인 금백조 신위를 향해 큰 심방의 새해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초감제 사설을 들으며 불현 듯 제주 신화 속 일만 팔천의 신의 이름은 뭐지? 신화 속 그 많은 이름 중에 내가 떠올린 이름은 겨우 소천국, 자청비, 가믄장이 정도였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헤라, 비너스 등 서양의 신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고, 삶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부르고 있지 않는가. 저들 이름들만큼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학생 역시 나처럼 서양문학에 대한 이해에 비해 우리 전통문학 시조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시조는 우리의 고유의 전통시이며 정형시다. 그러나 지나간 장르로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여러 이유야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시조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를 끌 기회의 장이 별로 없다는 현실이다. 긴 설명은 뒤로 넘기고, 일단 시조를 알기 위해선 시조작품을 찾아서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일본의 짧은 정형시 <하이쿠>는 이미 미국의 초·중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일본은 하이쿠의 세계화를 위해 번역작업을 국가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 모두가 하이쿠를 즐기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우리도 그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에서도 시조의 정서와 형식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건드리면 봇물 트듯 파급력은 대단할 거라 믿는다. K, 김치, 한복 등은 전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의 역사를 쓰고 있지 않는가. 너무나 한국적인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채근담에 前人云 抛却自家無盡藏(포각자가무진장) 沿門持鉢效貧兒(연문지발효빈아)라고 말했다. 자기 집 창고에 쌓인 재물은 내버려두고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동냥질한다는 뜻으로 자기 것을 하찮게 여겨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지구촌 시대에 세계화의 원동력은 우리의 것을 먼저 존중하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자존감의 발로가 아닐까.

문득 포켓몬 시리즈와 공룡들의 이름을 줄줄 외는 손자를 보면서 자청비, 가믄장이제주의 신화 속 이야기와 이름들을 외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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