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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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특임교수/ 논설위원

요양원은 어떤 곳일까? ‘죽어도 요양원은 보내지 말아달라’는 어머니의 절규처럼, 정녕 죽기보다 싫은 곳인가? 100세 어머니와 하루를 보내노라면, 문득 문득 요양원을 떠올리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일상의 막막함을 더하는 인지기능의 저하, 한 사람이 전담하지 않으면 불시에 닥쳐들 사고에의 예감, 오죽하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랴 싶은 절망적인 상황들. 하지만 오늘은 장마에 무성하게 올라온 마당의 잡초를 기운차게 뽑으시는 어머니.

요양원의 진실은 무엇일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요양원에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어쩌면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께서 설파하신,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까지’를 경험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

문제의 요양원에는, 70여명의 어르신들이 인생의 마지막 장을 보내고 계신다. 내가 배속된 팀에는 고근산, 산방산, 한라산, 송악산이라 붙여진 방마다 3∼4명의 원생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다. 방 이름에 무슨 큰 의미를 두었으랴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동이 가장 어려운 분들이 한라산에 머무신다. 2명의 요양보호사가 원생들의 식사·설거지·청소·기저귀·목욕 등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잠시 한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돌아서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수습생에게, ‘일에는 신경쓰지 말고 원생들의 얼굴과 이름부터 익히라’ 한다. 어르신들과 처음 만나는 진실의 순간, 마음과 마음이 마주 닿는 신뢰관계가 우선임을 뜻하리라. 안색·표정·눈빛만 보아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가 아픈지를 교감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작동돼야 한단다.

요양원의 하루를 보내면서 저도 몰래 튀어나오는 말이, ‘우리 집보다 낫구나’ 하는 반성이다. 아침·점심·저녁 식사의 정성스런 메뉴가 어머니의 식탁을 떠올리게 한다. 부족한 영양분을 더하는 ‘단백질 보충제’ 또한 수척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소환시킨다. 100세에 들어오셔서 105세가 되셨다는 어르신의 정정함이 단백질 덕분은 아닐까 싶다. 요양보호 현장의 진실 앞에서, ‘우리 어머니 100세’라고 자랑해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규칙적인 기저귀 검사와 철저한 의복 세탁, 정갈한 이부자리 또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 원칙이다.

그동안 얼마나 요양원을 오해하였던가? 요양보호사가 되어 직접 요양원을 관찰한 어느 신문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요양원이란 오직 죽어야만 퇴소할 수 있는 현대판 고려장. ‘환자영양식을 먹는 노인들의 배설물은 양·색깔·묽기까지 정확히 일치해, 노인 수용소의 공동생활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멸시켜 변의 색깔마저 같은 집단으로 만든다’는 현장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 중인 요양원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입소시켜 놓고, 아침 저녁으로 안녕을 살펴보는 요양보호사가 일한다. ‘집에서 보살피는 것보다 요양원의 전문적인 돌봄이 훨씬 더 안심이 된다’는 그녀의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더욱이 요양원 이사장의 어머니가 입소해서 같은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은가. 간호사의 시어머니도 와상으로 동숙 중. 통계에 의하면 2007∼2016년의 10년 동안 요양병원·요양원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제주도다. 2020년 현재, 도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1813명 중 치매 환자 수는 1만1474명. 치매환자 유병율이 전국 평균(10.3%)보다 높은 11.3%를 기록한다.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는 문제의 요양원이 집보다 나을 수 있을까? 돌과 바람처럼 살아온 이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천당 같은 요양원을 만들어 드릴 순 없는가. 이 또한 ‘다함께 미래로’를 지향하는 오영훈 도정의 빛나는 과제가 아닐까.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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