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해가 지지 않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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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다운증후군인 자신의 언니를 소개하자 흠칫 놀라는 남자에게 “너도 어쩔 수 없다.”며 자신에게서 떠나줄 것을 얘기한다.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의 언니가 부담스러워 다 떠났다며 말이다. 남자가 발끈해서 말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낯익은 제주 사람들의 언어로 우리 삶의 이야기를 담아 화제가 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이 문득 오래전 기억을 소환시켰다.

사회 초년생으로 장애인단체에 근무할 때 일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장애인을 초청해 강연 행사를 하는데, 강사의 활동을 종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워낙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순조롭게 강연이 끝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듣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나에게, 그분은 뜻밖의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선생님 때문에 굉장히 불쾌한 하루였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무슨 큰 실수를 했나 싶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그분은 초면인 내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신을 들어 차를 태운 것이 마치 물건 다루듯 하는 것 같아 수치스러웠고 자존심 상했다고 한다.

아뿔싸,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면전에 대고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건 심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일지라도 장애인단체에 근무하는 자였기에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당사자의 의사와 감정은 관계없이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대상,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무지함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날의 뼈저린 경험은 ‘세상사에 실수란 없다. 교훈만 있을 뿐’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사회복지를 하는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값진 교훈으로 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사회복지 현장의 이슈로 등장한 때가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어울리며 삶을 누리도록 돕는 복지전달체계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제주시에선 지난 3년 동안 선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장애인들의 삶에 많은 긍정적 변화를 이끌었다.

여기에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장애인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일반 시민들에 대한 교육과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이 얹어진다면 어느 사회 초년생의 무지함이 부른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당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통합’돌봄이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주시 통합돌봄 사업이 ‘일몰’ 사업이라 내년부터 국비 지원이 중단된다고 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도록 돕는 일에 기한을 정해 놓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애기구덕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별 복지를 실현하겠습니다.’ 민선 8기 정책 과제집에 있는 다짐의 문구에서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본다. 국비지원이 없더라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 지속될 수 있기를, 그래서 제주에서만큼은 돌봄의 해가 지지 않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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