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한동안 ‘제주살이’, ‘제주앓이’가 유행처럼 번졌다.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한 공기, 바다가 보이는 집, 감귤을 가꾸며 사는 삶이 소개되면서 제주는 환상의 섬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에선 ‘제주를 떠납니다’라는 영상이 더 주목받고 있다. 제주살이가 차갑게 식어버린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자리가 없어서 울고, 집값에 놀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온 필라테스 강사는 수강생이 얼마 없어서 한 달 수입이 고작 70만원이었다. 그래서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투잡(two job)을 뛰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귀농을 꿈꿨던 한 도시민은 급격히 오른 땅값 때문에 농지 구입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하려면 농지 구입에 5억원, 주택 매입에 5억원 등 10억원은 있어야 정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농촌지역의 한 마을은 주민 10명 중 4명이 외지인이었다. 그런데 사진작가를 했던 부부, 부동산과 건설업을 했던 이들이 떠나면서 빈집이 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2~3년을 살았던 젊은 세대들은 큰 회사가 없고 다양한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러 도시를 살았던 한 젊은이는 제주처럼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도시는 없다고 했는데 공감하는 글이 많이 달렸다. 그러면서 ‘괸당’에 대해 혈연·친족을 너머 ‘우리편’, ‘그들만의 무리’라고 정의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주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어느 곳에 사느냐, 아버지는 무얼 하시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괸당 문화와 좁은 지역사회가 실타래처럼 얽혀있어서 상견례와 다름없는 호구조사를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다고 전했다.
상식 밖의 사례도 유튜브에 소개됐다. 외지인이 한적한 마을에 식당을 차렸는데 주민들이 몰려와서 ‘대접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 여러 차례 돈을 내지 않고 음식 대접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뻔뻔함에 업주는 폐업을 한 후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음식점을 새로 차렸다고 했다.
속칭 ‘육지 것들’이란 이유로 정착 주민들보다 2~3배나 많은 마을회비 납부를 요구받기도 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점도 제주살이의 단점으로 꼽혔다. 제주시 도심을 벗어나면 두세 번 환승을 해야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중교통으로는 출·퇴근과 나들이가 불편해 웬만한 도민들은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비싼 물가도 두 손을 들게 했다. 제주가 관광지여서 그런지 커피와 음식값이 서울보다 전혀 싸지 않다고 했다.
원하는 물건을 사려고 해도 추가 배송비로 7000~8000원을 더 내야 하는데 섬 지역이어서 배송이 안 되는 물품이 많고 반품도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났다.
겨울철 상당히 추울 때만 난방을 했는데 가스비가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다고 호소했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낮아서 가스비가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하와이와 뉴질랜드와 같은 환상의 섬에서 살기를 바랐던 이들이 떠나고 있다. 여러 이유는 핑계가 될 수 있지만 안정된 일자리가 없고 집값이 비싼 점은 제주살이를 포기한 공통 분모였다.
억 소리 나는 부동산가격을 놓고 유튜브에 출연한 전문가는 “지난 10년 동안 제주도는 부자가 됐지만 제주도민들은 더 가난해졌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열기 위한 제주살이가 고행길이 됐다.
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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