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은 역시 더워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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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한여름 더위의 맹렬함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며칠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사람을 들볶는다. 불볕더위란 말이 명실상부하게 다가온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오늘도 이 더위를 어떻게 지날까 근심부터 앞선다. 그러나 한여름은 역시 더워야 제 맛이다. 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욕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절기가 제 구실을 못 하는 걸 보면 걱정스러워질 때가 있다. 계절에 맞는 제철 과일을 묻는 문제를 초등학교 시험에 내질 못하게 된 지가 꽤 되었다. 예전에야 봄에는 딸기와 복숭아, 살구요 여름에는 수박과 참외, 가을에는 밤과 대추, 감을 들면서 제철 과일을 꼽았다. 그러나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이런 과일을 사 먹을 수가 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야 과일의 원래 계절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먹을거리뿐만 아니다. 한 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이 천지를 달구는 시절이 되어도 어딜 가든 빵빵하게 틀어놓은 냉방기는 여름의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강추위가 몰아쳐도 난방기가 어디나 가동되고 있으니 어찌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랴

우리 몸이 몇 천 년을 간직하고 전승해온 절기의 변화는, 근래 들어 급격히 파괴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자니 몸은 갈수록 약해지고, 이름을 알 수없는 병들이 횡행한다. 그렇게 치자면 여름에는 역시 무더위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있어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말이야 이렇게 해도 나 자신이 이미 한여름의 폭염을 떠올리면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무엇이든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면서 머리위에서 위력을 떨치는 여름 태양은, 사람의 의욕마저 꺾어버릴 듯한 기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허리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날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의욕상실이다. 지열이 후끈 천지를 달구니 용광로가 따로 없다.

그러나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아니라면 곡식이 어찌 여물겠는가. 흔히 하는 말처럼 시련이 있어야 열매가 튼실하게 맺는 법이다. 여름을 온전히 버텨낸 곡식만이 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理致)가 깨우쳐주는 교훈이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서 인격이 형성되고 인생의 꽃은 시련 뒤에 피어나며, 인생의 열매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열려야 단맛이 들고 참된 인격자로 탄생된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이 천리와 순리에 따르듯 인간도 우주질서에 순종하여 한 계단 또 한 계단 고난을 이기며 살아가노라면 폭풍우 후에 찬란한 무지개가 서는데, 찬란한 성공의 영광을 맞게 될 것이다. 숱한 시련과 포기하고 싶은 좌절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이, 결국은 결승점을 향해 앞을 보고 내달린다. 그것은 지금 내딛는 한 발짝이다.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오늘의 땀방울이 결승점으로 한 발짝 다가간 내일이 되길 기대해본다. 저녁이 되어 바람이라도 선뜻 불고 달빛이 환히 비추면 그 상쾌한 기분이야 무엇으로도 견줄 바 없다. 오늘도 여전히 더운 여름의 열기가 후끈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 속으로 분명히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들어있는 듯하다. 부르지 않아도 계절은 고요히 내 곁에 다가와 그림처럼 문 밖에서 입추가 다가와 기다리고 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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