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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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논설위원

회화에는 주변의 자연이나 보이는 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구상화(具象畵)가 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이미지들을 그리는 추상화(抽象畵)가 있다. 사실적이든 마음속의 이미지이든 모두 표현이라는 언어로 통용된다. 보통 그림은 선과 면, 형태로 구성되며, 색채로써 명암과 깊이를 표현하여 화면에 질서를 정하고, 리듬을 부여하면서 완성된다. 그러나 창작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에는 화가의 개성이 뒤따른다. 화가들 개개인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드로잉(drawing)’이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은 회화만이 아니라 조각, 건축, 영화, 연극, 디자인, 패션, 인류학, 민속학, 고고학 등에서도 널리 활용된다. 각 분야마다 필요한 구성과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설계 도면이 좋아야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드로잉 솜씨가 탄탄하면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며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드로잉’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그림이나 도면, 스케치라고 하는데 ‘선(線) 표현으로 사물의 형상을 그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과 유사한 말로는 소묘, 스케치, 크로키, 데생, 정밀 묘사가 있다. 스케치는 본 작품의 기초를 위한 구상 단계의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고, 크로키는 움직이는 대상의 특징을 순간 포착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밀 묘사는 세부적인 표현으로 물체의 생긴 모양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 모두에는 기본적으로 드로잉이라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소묘(素描)는 프랑스어 ‘데생(dessin)’의 번역어로서 연필, 목탄, 콘테, 붓, 펜, 철필 같은 도구로 사물의 형태와 명암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이들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화가 지망생에게 소묘는 습작이 되고, 화가에게는 그 자체로 완성작이 되기도 한다.

드로잉을 많이 남긴 화가로는 렘브란트와 밀레가 있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라이덴 출신으로 <야경> <자화상> 등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했으며, 도제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도제 공방 견습성에게 채색법과 드로잉을 세세하게 가르쳤는데 제자들은 렘브란트의 손놀림을 보고 자신이 그의 제자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질 정도였다.

밀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씨 뿌리는 사람> 등 주로 농민의 삶을 아름답고 시적인 정취로 그렸다. 그가 남긴 수많은 드로잉은 밀레 명화 작품들의 스케치가 되었고, 그의 강한 드로잉은 농부들의 활력 있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이중섭 또한 일본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해 미술해부학에 열중하며 인체와 동물의 골격습작을 되풀이했다. 이중섭의 강렬하고도 활달한 드로잉 솜씨는 유학 시절에도 유명했는데, 그것이 바탕이 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은지화>인 것이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드로잉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이중섭 가족이 단란한 생활을 했던 서귀포의 시간과 공간이 함축된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손(手)은 네덜란드의 라이덴을 기억하게 하고, 밀레의 손은 프랑스의 바르비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했으며, 이중섭의 손은 한국 서귀포를 잊지 못하게 한다. 드로잉 하나로 많은 사람이 그들이 사랑했던 도시를 영원히 기억하게 한 것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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