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운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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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대중·민중·군중이 현대사의 전면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한일관계의 불매운동은 경제적 대중운동의 대표적인 경우다. 정치적 좌우 대립에서 중요 의제의 최종 결정은 대중적 함성에 맡겨져 온 듯하다. 문화의 대중적 힘은 훨씬 강력하며 세계적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종교에서의 대중 운동은 진실과 거짓을 뒤바꿀 능력마저 나타내어 왔다.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실행 과정은 대중적 함성에 기대는 방식이었다.

마음에 진실을 지닌 자는 선전 선동보다는 설득하며 기다리려 할 것이다. 선전 선동의 방식으로 중요한 일을 해내려는 대중운동은 진실과 설득의 방식에는 자신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흐름 속에서 대중운동은 자신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적 함성으로 시대를 장악하려는 사고방식은 사회를 심각한 위기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대중운동은 자신의 운명에 반역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종교인의 윤리 문제가 대중적 판단 대상이 되면, 종교인은 삶의 토대가 흔들릴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어떤 윤리적 판단에서도 대중 자신이 피고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적인 함성이 법정에 고발되거나 법적제재를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중이 책임을 요구받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대중은 심사숙고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중은 오히려 선전 선동을 기다리는 편이다. 잘못된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흔히 생겨나게 되는 셈이다.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는 대중운동을 철없는 부자집 도련님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울고불고 소리치면 다 들어주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부자집 아이에 비유한 것이다. 그렇게 철없이 성장하는 동안에 도련님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중·민중·군중이 아닌 누군가가 나타나서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북한마저도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민주주의 이상의 정치 체제는 없는 듯한데, 그 민주주의의 근거요 토대요 목표와 지향점은 대중·민중·군중인 것이 분명하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한참 세월이 흘렀어도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시민 계층이 아직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외치고 결정할 대중 운동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러시아에는 아직 형성되지 못한 민주주의를 위한 함성이 수시로 들려온다.

이 나라에서 이만큼 힘있는 대중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까지는 많은 고난과 시련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제는 가끔, 그 목소리가 어두운 권력의 가능성을 보일 때도 있었다.

자신에게도 어려운 요구를 하는 대중, 대중의 함성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전하려는 언론, 대중이 아직 바라보지 못하는 저 앞을 바라보는 대중적 지도자…현(現) 정부와 시민계층을 향해 그런 꿈을 꾸는 것이 나 혼자만일까.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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