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과거와 현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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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 논설위원

제주엔 오름이 많다. 360여 개나 되는 오름의 높이는 100m~400m 정도로 비교적 야트막하다. 서우봉은 109.5m이니 그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한다. 바다에 접한 몇 안 되는 오름 중 하나인 서우봉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름이 높지 않아 유유자적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 어지러운 날, 이곳의 아픈 역사와 마주하면 내 문제의 소소함에 저절로 마음정리가 된다는 데 있다.

서우봉을 오르는 출발점은 항상 북촌 해동포구이다. 해동포구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바로 언덕길과 마주한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라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다. 오른편 작은 포구엔 아치형 다리가 걸쳐져 있고, 작은 낚싯배도 보인다. 제법 운치 있다.

그리 힘들지 않게 서우봉 정상을 정복하고, 서쪽을 향해 내려가다 보면 함덕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나무 벤치에 무심코 걸터앉으면, 서 있을 때 보이지 않던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서쪽 끝자락을 시작으로 내가 앉아 있는 서우봉 아래 해변까지 쭈욱 눈으로 훑으니, 흡사 대지가 바다를 감싸 안은 모양새다. 함덕해수욕장 모래사장 한가운데에서 아늑하고 포근함을 느꼈던 이유를 깨닫는다.

서우봉은 제주의 아름다운 관광지 중 하나이다. 시선을 멀리 위로 두면 한라산이 웅장하게 서 있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함덕해수욕장이 보인다. 봄이 되면 서우봉 중허리엔 노란 유채꽃이 곱다. 바람 좋은 날은 패러글라이딩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날씨 좋은 날엔 말이 유유자적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반면 서우봉에는 20여 개의 진지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시, 연합군 공격을 위해 일본군이 구축한 인공동굴이다. 서우봉 해안절벽을 따라 구축된 진지동굴은 총 길이 340m로 제주도에 건설된 진지동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서우봉 진지동굴은 일제강점기 말 함덕초등학교에 주둔하던 일본군 전투병력 1개 대대에서 보급로(함덕~북촌) 및 피난처로 진지동굴을 설치하던 중 해방이 되어 중단되었다고 한다. 당시 20세 이상은 징용으로 끌려갔고 15세~19세까지는 강제동원되어 근로봉사대라는 명목으로 강제노역을 시켰다. 지금의 중고등학생 정도의 나이 어린 청소년들의 강제노역장, 육체적 정신적 아픔의 역사 현장이다.

이 역사의 현장은 제주4·3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우봉 봉우리를 기점으로 서쪽은 함덕, 동쪽은 북촌이다. 오름의 동쪽 면적이 북촌에 속하며 서우봉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이 서우봉 정상에서 북촌 바닷가로 향한 해안절벽이 몬주기알, 4·3희생터이다. 몬주기알 아래에는 자연동굴이 있다. 입구는 작지만, 내부가 비교적 넓어 4·3사건 때 북촌주민들뿐만 아니라 함덕주민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다. 토벌대의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8년 12월 26일께 4~5명의 여성이 절벽 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서우봉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전쟁과 평화가,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 서우봉을 돌아 다시 출발점 해동포구로 돌아오며 생각해본다. 두 번 다시 이 땅에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국력과 국방력을 기르고, 국위를 선양하는 일도 중요하다. 피해에 대한 보상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잊지 않는 일이다.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새겨 망각과 타협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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