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가 사라져버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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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논설위원

뜬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토끼 눈이 되어 찾아가니 은사님은 나의 논문을 툭 던지셨다. 첫 문장부터 비문이라며 다시 써 오라고 하셨다. 나는 은사님이 아끼는 제자를 대하는 방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은사님은 논문 작성 과정에서 독한 최루가스를 쐰 듯 그렁그렁 눈물이 눈에 가득해야만 좋은 학자가 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계셨다. 다시 며칠 밤잠 설쳐가며 교정을 보고 다시 논문을 갖다 드렸다. 은사님은 찬찬히 살펴보시고는 이제 됐다고 하셨다. 학자가 되는 과정은 여간내기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올바른 세상을 유지하려면 어느 분야나 ‘문지기’가 필요하다. 문지기는 떠돌이가 인간들이 사는 성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깡패나 사기꾼은 아닌지 요리조리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회사에 취직하려면 시험을 보고 면접을 거치고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려면 내신성적도 좋아야 하고 수능시험도 봐야 한다. 학자가 되려면 표절 없는 논문을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권력에 머리를 조아려 부정과 비리를 용인하는 문지기들이 왕왕 있으니 공정과 정의가 사라진 사회라고 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지기’의 영어식 표현은 ‘게이트키퍼(Gate Keeper)’인데, 언론에서는 뉴스들을 취사 선택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편집자를 가리킨다. 편집자는 신문의 1면에 넣을 기사를 정해야 하고, 한정된 취재 기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유진 마이어’는 “신문은 특정 이익에 협력해서는 안 되며, 공정하고 자유로우며, 사회 문제와 공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건전해야 한다.”(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129쪽.)라며 게이트키퍼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다며 기사를 빼달라고 해도 신문은 꿈쩍도 하지 않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7년 동안 매출이 내리 감소하던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에 팔리고 만다. 권력을 휘두르던 엘리트들은 컴퓨터를 갖고 노는 ‘아마존’이며 ‘구글’, ‘페이스북’ 등의 성장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모든 물길이 합쳐져 디지털이라는 하나의 폭포에서 만나게 되었다.”(위의 책, 143쪽.)라고 이야기된다. 관료제와 기업이 느릿느릿 일을 하면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까닭에 게이트키퍼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말했다.

문제는 그렇게 등장한 디지털 세력들이 결코 민주주의 가치를 앞세우기보다는 팽창하고 있는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상업적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짜 게이트키퍼들이 상업적 목적을 우선시하며 언론을 왜곡하고, 대중들의 생각을 조작하는 따위의 비민주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우려 섞인 말들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와 「알고리즘의 편견(CODED BIAS)」(2020)은 디지털 세력들의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세상은 다양한 문지기들이 필요하다. 어느 분야에나 존재하는 문지기들은 자신의 성을 굳건히 지킬 강단이 있어야 한다. 권력자의 부인이라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표절논문을 용인하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데이터를 장악한 디지털 세력들의 언론 왜곡을 방치하면 세상은 무너진다.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는 문지기들을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최후의 보루인 민주 시민들이 문지기 노릇을 해야 할 때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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