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功)을 세우면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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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중국 한(漢)나라의 개국 공신 가운데 장량, 소하, 한신을 한초삼걸(漢初三傑)이라 부른다. 유방을 도와 초한 전쟁에서 항우를 이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한신의 업적은 군사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으로 쳐들어갈 듯 소리를 지르며 상대를 교란한 후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한다),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밝을 때 잔도를 복구하는 척하면서, 어두울 때 진창을 건넌다), 배수진(背水陣), ‘사면초가’를 탄생시킨 십면매복(十面埋伏·사방으로 매복해 포위한다) 등의 다양한 전략 전술을 구가하면서 항우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제나라를 평정하자 그 공으로 제나라 왕(齊王) 자리를 요구하면서는 유방의 눈 밖에 났다. 결국은 토사구팽(兎死狗烹)당했다.

▲과거 전쟁의 결과가 논공행상의 장을 펼쳤다면 지금은 단연 선거다. 오영훈 도정 출범 후 수많은 인사들이 인사에 들떠 있다고 한다. 이 자리 저 자리를 놓고 하마평이 무성해서다. 그 면면은 대개가 선거 공신이다. 이미 몇몇 인사에서 봤듯이 줄은 잘 서야 한다. 그 줄은 남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작지 않은 권력까지 행사하도록 한다.

이에 반해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하는데 어찌 신맛이 묻어 있는 옛 술까지 함께 담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래서야 도민들이 제대로 술맛을 음미할 수 있겠는가.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라는 말이 있다. 공을 이루고 나면 이내 물러가는 게 하늘의 이치라는 의미다. 오 지사의 당선을 진심으로 도왔던 사람이라면 귀담아들어야 한다. 너도나도 공을 세웠다고 한자리를 바란다면 인사권자라도 감당할 수 없다.

▲장량은 공명을 이룬 뒤 때맞춰 물러났기에 시기와 질투가 횡행하던 왕조에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자손들도 오래도록 봉록을 누릴 수 있었다. 소하는 재상직에 올랐으나, 의심 많은 유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며 욕심이 없음을 보여줬다.

“창업(創業)은 쉬우나 수성(守成)은 어렵다”고 한다. 오 지사는 이 말을 유념하길 바란다. 공신들이 있기에 선거에 이길 수 있었다고 해서, 공신만으로 대업을 이룬 것은 아니다. ‘장삼이사’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공신을 위하여’라고 외친다면 민심은 변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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