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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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흥얼대는 노래다. 우리 사는 세상을 요지경에 빗댔다. 세상에 실재하는 것들이나 일어나는 현상들이 저마다 다르다는 내용이다.

사실 자연 만상은 신기하리만치 서로 다르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용모나 드러나지 않은 품성까지도 제각각이다. 취미나 재능, 목소리나 식성, 종교, 문화, 정치적인 이념이나 생각까지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이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펼치는 삶의 무대야말로 다름의 미학이다.

그러함에도 그 빤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 차별하거나 배척하며 갈등을 빚는다. 국적이나 인종,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 노소에 따라서 차별하기도 한다. 우리 정치판의 차별은 더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는 선, 너희는 악’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며 독선과 독단으로 일관한다. 책임과 임무는 내팽개치면서도 세비나 온갖 특혜는 다 챙긴다. 격에 맞지 않은 치졸한 행태들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차이’와 ‘차별’이 있다. 차이는 ‘서로 다름’이다. 차별은 ‘다르다’는 이유로 차등해서 구분 짓는 것이다. 그에 따라붙는 말이 ‘다르다’와 ‘틀리다’이다. “저 사람과 나는 피부색이 다르다.”, “이 문제의 답은 틀리다”와 같은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말은 피부색이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문제의 답이 틀리다’는 말은 ‘문제의 답이 정답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다른데도 우리는 때때로 구분하지 않고 쓴다.

피부색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저 사람은 우리와 피부색이 틀려.”라고 무심결에 말하기도 한다. 이런 언어 관행에서 알 수 있듯이 차별의 시작은 ‘다른 것=틀린 것’이란 우리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편견도 차별로 이어진다. 일의 속성과는 무관하게 남자는 여자보다 일을 더 잘할 것이라는 편견. 어떤 경우는 잘못된 법규로 부당하게 차별이 자행되기도 한다. 각종 시험이나 취업에 부가 점수를 주는 법이나 규정이다. 치열한 경쟁에서는 사소한 점수로 당락이 뒤바뀐다. ‘실력이나 능력’에 의한 판별이 아니면 공정치 못한 차별적 조치다. 누구 때문에 특채되고, 무엇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불공정한 조치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특혜나 특권을 부여받는 것도 차별적인 제도다. 차제에 우리 사회의 그런 불공한 법이나 규정들을 낱낱이 까발리고 국민적 논의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우리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그런 세상을 다스리는 법과 제도는 ‘공정’의 기준에 엄격해야 한다. 온갖 갈등과 분란은 차별과 불공정에서 비롯된다. 요즘의 정치 행태를 보면 입에 발린 공정과 공평뿐이다. 협상과 타협은 사라진 지 오래다. 힘의 논리에 따른 밀어붙이기식 쟁탈전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법까지 제 이권 챙기듯 제정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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