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부자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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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논설위원

지난 8월 7일 필자가 사는 일본 교토(京都)의 중심가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교토>를 찾았다. 행사장 주변에는 경찰관들의 어마어마한 경비가 펼쳐져, 전시실에는 비행기 탑승 시와 같은 문형금속탐지기를 지나서 들어가야 했다. 행사장 소재지는 온라인예약을 한 사람만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홍보용 전단에도 기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사장을 알아차린 극우단체가 주변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대음량의 확성기로 “표현의 부자유전을 곧바로 그만두라!” “반일 극좌는 일본에서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연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벌어진 극우 유튜버들의 고성·욕설이 인구 140만명의 중경 도시 일본 교토의 한복판에서 재현된 셈이다. 그런 속에서도 전시가 예정된 이틀간에 700명 남짓한 시민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京都新聞』8월 8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표현의 부자유전>은 보수우익 정치인의 압력이나 극우단체의 폭력적인 협박으로 전시 중지에 몰린 예술 작품을 모으고 전시하는 “미술전”이며, ”평화의 소녀상”를 비롯해 히로히토 ‘천황’을 비판·풍자하는 작품 등이 전시된다. 2019년 8월 일본 최대의 국제 예술전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특별전<표현의 부자유, 그 후>가 극우단체의 항의나 정부의 압력으로 개최한 지 불과 3일 만에 중단된 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이에 항의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내건 일본 각지의 시민 그룹이 같은 주제의 전시를 순회 개최해 온 것이다.

작년 5월의 도쿄에서의 전시는 행사장의 대출 취소로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7월 나고야에서 개막된 “표현의 부자유전”은 행사장에 배달된 우편물 속의 폭죽이 파열해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달에는 오사카부(府)가 관리하는 행사장에서 예정되었던 전시가 항의가 쇄도했다는 이유로 승인 취소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주최 측 시민 단체는 이에 항의해 법원에 제소했으며, 취소 조치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취지”에 반한다는 법원의 판단을 이끌어냈다. <표현의 부자유전>을 둘러싼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시민에게 과거청산의 상징임을 넘어 민주주의나 평화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번 교토에서의 전시는 그러한 뜻 있는 일본 시민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새삼스럽게 부각했다. 극우단체의 폭력적인 시위뿐만 아니라 행사장 주변의 일반 주민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는 오랜 전통과 더불어 혁신의 기풍 넘치는 고도(古都)로서도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둘러싼 주민의 반응은 아베 장기 집권 하에서 두드러진 보수화의 물결이 이곳 교토에도 몰려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한편, 지난 7월의 아베 전 총리 저격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일본의 보수우익 정치인과 ‘통일교’(현재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논란은 일본의 우경화의 내실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침범한 일본은 한국인에게 영원히 사죄해야 한다는 역사인식을 교리로 삼는 ‘통일교’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면서 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른바 ‘역사수정주의’와는 배치되는 존재일 것이다. 최근 잇따라 들키고 있는 일본 보수우익 정치인과 ‘통일교’와의 유착은 단순한 보수화·우경화라는 규정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일본 정치 사회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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