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들의 ‘농지 사랑’
고위공직자들의 ‘농지 사랑’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고위공직자들의 농지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것 같다. 헌법은 밭을 가는 사람이 전답을 가져야 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을 보면 농부가 아님에도 농지를 갖고 있는 ‘가짜 농부’들이 넘쳐났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시세차익을 노려 농지를 취득하려는 투기성 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2015년 5월 농지기능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부동산이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으로 각인돼서일까. 농지 잠식을 막고, 투기를 근절해야 할 고위공직자들이 되레 농지를 소유하면서 남다른 ‘농지 사랑’을 보여줬다.

2020년 8월 고영권 제주도 정무부지사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에서는 고 후보가 11억원을 대출받고 구좌읍 동복리 농지를 매입한 것을 두고 집중 포화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손유원 제주도 감사위원장 후보자는 애월읍 광령리 농지에서 10년간 농사를 짓지 않다가 매실나무를 듬성듬성 심어 놓은 문제로 인사청문에서 뭇매를 맞았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국회의원 시절, 농지법 위반에 대해 지난해 10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출한 부동산 투기 의혹 관련, 오영훈 의원 등 12명 전원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민주당 의원 2명은 출당 조치됐다.

농지법 위반자에게 농지처분명령을 내려야 할 최종 결정권을 가진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이 인사청문에서 농지법 위반 의혹에 고개를 숙였다.

강병삼 시장은 2019년 5억원을 대출받고 아라동 주거지역 인근 농지를 지인들과 공동 매입했다. 인사청문에서 아라동 농지는 변호사가 아니면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매물로 경매에서 3번 유찰돼 시세보다 50%나 내려간 금액에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종우 시장은 2018년 농사를 짓겠다며 안덕면 동광리 소재 농지를 1억8000만원에 구입했다. 그런데 예초기와 방제복을 빼면 농자재 구매 내역은 없었고, 농협에서 구입한 농약은 잔디밭 용도인 것으로 인사청문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이 시장과 배우자는 3차례에 걸쳐 40만원 상당의 기본형 공익직불금까지 받았다. 이 직불금은 농민의 소득 안정과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금이다.

집행권자인 행정시장은 법 집행과 행정처분에서 공정성과 신뢰를 지켜야한다. 그런데 향후 농지법 위반자를 적발하고 처분하기 위한 결재서류에 사인을 하기가 부끄럽게 됐다.

인사청문에서 강 시장은 “농지를 매입하면서 어느 정도 재산 증식의 목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 시장은 “2000년 과수원 매각 이후 전업 농사를 하지 못했다. 배우자 중심으로 농사를 했고, 저 스스로 자경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양 행정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소유할 경우 농지처분명령을 내리기 전 소명 기회를 준다. 앞으로 농지법 위반자들도 시장 후보들이 말한 것처럼 해명할지 우려스럽다.

다행히도 강병삼 시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소유한 농지를 빠른 시일 내 모두 처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종우 시장은 자녀가 소유한 농지에 대해 시정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짜 농부’를 잡아내야 할 양 행정시장이 되레 그 가면을 쓴 모습에 인사청문을 지켜본 많은 시민들, 특히 농민들은 허탈감이 더욱 컸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이 25일 양 행정시장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이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성진 2024-03-29 01:47:20
청렴했던 공직자들은 출세의 길이 없다.
이번 총선에서는 재산이 많은 후보자는 재산 형성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 투기의 의혹이 짙은 후보자는 확실히 낙천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생 공직자의 신분으로 자손 키워가며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도 없는데 30억 이상의 재산이 확보되어 있다면 부동산투기의 원흉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보면 놀랍다기보다 분노가 앞설 정도로 재산이 많다는 사실로 부동산투기의 원흉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부동산투기의 원흉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일생 청렴했던 공직자들은 퇴직 후에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