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디테일에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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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뜻글자라 모양을 통째로 외워야 하는 한자는 어렵다. 그런 한자로 구성된 한문은 더 어렵다. 말의 형태 변화가 없는 ‘고립어(孤立語)’이기 때문이란다. 굴절어인 영어나 첨가어인 우리말은 격이나 품사 변화, 또는 조사나 어미가 붙어서 말의 형태가 바뀐다. 고립어는 말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말이 배열되는 순서나 맥락으로 뜻을 파악해야 한다. 조사 역할을 하는 허사(虛辭)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말의 특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문리(文理)를 깨친다.”라는 말과 함께 암기 위주 교육이 권장되었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오늘날 교육에서는 외면받지만, 문장을 많이 접해야 배열순서나 전후 관계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남다른 문장, 오래된 문장처럼 다양한 해석이 허용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알지 못해서다.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학파 가운데 이러한 차이에 주목한 이들을 명가(名家)라 부른다.

명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혜시(惠施)는 장자(莊子)와 가깝게 지냈다. 그래선지 장자가 쓴 책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천하(天下) 편에는 그가 주장했다는 역물십사(歷物十事), 곧 열 개의 명제가 실려 있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다섯 번째 명제만 소개하면 이렇다. “크게 같지만 작은 같음과는 다르다(大同而與小同異). 이것을 작은 같고 다름이라고 말한다(此之謂小同異). 만물은 반드시 같고 반드시 다르다(萬物畢同畢異). 이것을 큰 같고 다름이라고 말한다(此之謂大同異).”

여기에서 나왔다는 고사성어가 대동소이(大同小異)다. 그런데 ‘이(而)’가 왜 거기 있는지, ‘소동이’와 ‘대동이’는 그렇더라도 ‘필동필이’가 무엇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더 풀어보자. “크게 보면 같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도 같은 것과 비교하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같고 다름이 작은 것’이다. 모든 것들에는 ‘다른 것과 구분되는 반드시 같고 다른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은 같고 다름이 큰 것이다.”

노자는 아름답고 잘났다고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 덕분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살리고, 어렵고 쉬움은 서로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 견주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이고, 악기 소리와 목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른다(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라고 말한다. 다들 이 말을 “지나고 보면 세상사 다 그런 법이다.”로 말하고 알아듣는다. 있고 없음, 어렵고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악기 소리와 목소리, 앞뒤를 따져 뭐 하느냐는 달관으로 이해한 것이다.

혜시의 다섯 번째 명제에 따르면, 노자는 이런 식으로 회피하지 않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탄식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그만큼 힘든, 그래도 산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러니 살아는 있지 않냐고, 다들 힘든 게 있기 마련이라는 말은 제대로 된 위로는커녕 공감조차도 못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고들 말한다. 대동을 강요하는 것과 소이를 헤아려 인정하는 것은 작지만 큰 차이다. 이것이 명품을 만드는 차이, 디테일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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