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가 불러일으킨 문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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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교수 경영정보학과/ 논설위원

최근 온라인에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라고 했더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라고 반박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매우 깊고 간절하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심심(甚深)’이란 뜻을 지루하다고 할 때 쓰는 ‘심심’으로 오해하면서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는 한글이란 우수한 표기수단을 가져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갖는다. 문맹률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라면, ‘문해력’은 글의 의미까지 해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낮으면 글자를 읽을 수 있지만,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고 미리 방지할 수도 있다. 평생학습으로 문해력을 높여 자신을 지켜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이지만 글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75%로 나타났다. OECD가 전 세계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읽기 점수는 평균 514점으로 OECD 평균 487점보다 높았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문항에서는 정답률이 25.6%로 OECD 평균 47.4%보다 낮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율은 낮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간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7.5%, 종합독서량은 4.5권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중 절반은 일 년에 1권의 책도 안 읽는다. 2013년에 OECD가 조사한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하다.’라는 문항에서 한국이 꼴찌였고 그 다음은 일본이었다. 동양권의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 자기 주도적으로 평생학습을 잘 하지 않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실천하기란 어렵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하다’라는 것은 단순히 계약서를 눈으로 하나하나 읽어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계약서를 읽으면서 계약서에 담긴 구체적인 문구의 숨어 있는 뜻이 무엇인지, 계약 내용이 실천되지 않았을 경우 대책이 있는지도 고민하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전문적인 단어들이 들어찬 계약서를 앞뒤로 연결해가며 훑어본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건축학에서 건축, 신축, 개축, 증축, 재축, 이전은 각기 다른 뜻을 갖는다. 건축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것은 건물의 면적이다. 건물의 면적을 보는 방법에 따라서 연면적, 바닥면적, 건축면적, 실면적, 대지면적이 쓰인다. 내가 계약하려는 아파트의 크기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파트 크기를 나타내는 말에는 공급면적, 계약면적, 전용면적, 주거공용면적, 서비스면적, 기타공용면적, 실면적이 있다. 이 단어들은 뉘앙스가 다른 수준이 아니라, 말의 뜻이 아예 다르다. 상거래의 법률 용어도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말이 많다. 예를 들어, 계약해제는 기존 계약을 처음부터 없애어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계약해지는 은행적금을 해지하는 것처럼 중간에 계약을 그만두어 장래에 대한 계약을 없애는 것이다. 법률에서 자주 사용되는 명도, 최고, 가처분, 가압류, 가등기, 보전처분은 단어의 뜻을 아는 경우와 모를 때에 계약서 작성이 달라진다.

‘무료하게 지낸다.’처럼 단순히 인터넷을 검색하면 그만인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맥락에 따라서, 단어의 선택에 따라서 전혀 다른 뜻을 가질 때이다. 문해력을 높이려면 해당 분야의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학습해야 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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