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모든 것이 소비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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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논설위원

무더위와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지고 실내 온도가 33도를 넘어서고 있던 8월 초순, 집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밤더위를 식히려고 집 근처 삼양 샛도리물에 갔었다. 며칠 전 신문에 샛도리물과 용천수 휴가에 대한 기사가 실렸었는데, 저녁임에도 인근 주민보다 관광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놀랐다. 온라인 세계에 한번 노출되면, 그 영향력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 것이었다.

잠시 드는 생각이 주변 집 주민들이 잠을 청하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제는 제주 사람들의 물 생활문화까지 소비시장에 노출될 만큼 제주사람들의 생활 영역까지도 소비되는 본격 제주소비시대가 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속살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것들도 머지않아 남아있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게 말하면 자원화가 된 것인데도 필자는 우려가 앞섰다.

관광객들이나 주민들이 제주에 대해 바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청정 자연’이다. 처음에는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풍광을, 그 다음에는 코와 가슴을 열어주는 공기를, 다음에는 입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시원한 물 등 제주 자연으로 오감을 힐링 할 수 있는 ‘청정 자연’은 그 자체로 제주의 브랜드가 되어 소비되어 왔다.

그런데 본격 소비 시대가 되더니, 이제는 제주 사람들의 생활문화까지도 하나의 소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양성과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쫓는 경향을 보여주는 온라인 세계에 한 번 노출되고 나면, 그 어떤 것도 숨기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욕망의 수위는 높아지면서 제주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처럼 아껴두었던 많은 장소들과 생활마저 소비자들을 위한 자본에 노출되고 소모되고 있다. 이것은 경쟁이 되어 섬 그리드락을 발생시키고 있다. 제주로 이주해 와서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청정 자연’을 쫓아 이주해온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고도 이야기 한다.

몇 년 전 하와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몇몇 명승 장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필자는 명승지를 방문할 때마다 차에서 기다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들어보니, 그곳에는 한 번에 10대 정도의 차량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들어간 차량이 나온 뒤에야 우리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지를 물었을 때, 나온 대답에 놀랐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소비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적인 관리와 활용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소비자가 몰려든다고 ‘물 때도 한 때다’ 싶은 마음으로 현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 적당한 소비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하와이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브랜드를 지키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한 번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청정 자연’과 같은 매력을 잃어버리면 모든 소비가 끝이 나게 된다. 소비의 적당한 간극은 매력적인 제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영국의 격언 중에 지방에는 풍미가 있다는 말이 있다. 풍미란 것은 무엇인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상한 맛인 것이다. 그러나 본격 제주 소비시대가 열리면서 제주의 풍미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새삼 영국의 격언이 다시 생각나는 요즘이다. 제주의 풍미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현재 제주의 모든 것이 일순간에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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