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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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5년 54세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후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소련과 국제사회의 대변혁을 이끈 인물이다.

동서 냉전의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소련 해체, 동구권의 민주화 중심에 그가 있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사망이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제주도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북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0년 6월 4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소 수교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개혁개방 정책과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 정책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후 1990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 크렘린 궁에서 한소 정상회담을 했고, 1991년 4월 19일에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소련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주목받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한소 정상회담 후 제주가 세계 정상회담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 4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같은 해 6월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제주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이어 2004년 7월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제주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특히 연이은 한소, 한미, 한일 정상회담은 2000년 9월 북한 김용순 당비서의 제주 방문, 같은 해 10월 남북 국방장관 및 남북 고위급 회담 제주 개최로 이어졌고, 마침내 2005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제주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되기에 이른다.

▲미중의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신냉전 시대를 맞아 영면에 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세계사와 제주에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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