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걱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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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예전 한복가게에서 옷 짓는 일을 배울 때다. 남자 한복은 저고리, 바지, 마고자, 조끼, 두루마기 등 가짓수가 여러 개라 하나씩 분담하여 만들었다. 바지 담당은 경력이 짧은 나의 몫이었다.

바느질이 곱게 나오지 않은 어느 날, 혹여 바지 때문에 고객에게 남자 한복 전체를 꼬투리 잡힐까 봐 마음 졸이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고참 언니가 말했다. “더 걱정해. 그래야 일이 잘 풀려.” 그제야 나는 그 언니의 얼굴이 늘 울상인 이유를 알았다.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 것만큼 허방 짚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며 걱정을 줍는다. 그중 열에 아홉은 쓸데없다는 걸 알지만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긍정보다 부정적으로 쏠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걱정은 TV에서 자주 봤던 불투명한 상자 속 물건이 뭔지 알아맞히는 게임과 닮았다. 안대를 한 사람이 상자에 손을 집어넣으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 정체를 안 순간 얼마나 허탈한 표정을 짓던가. 걱정도 막상 부딪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삶의 파편들이다. 노심초사하던 게 때가 되면 손에 쥔 모래알처럼 사르르 사라지고 마니까.

걸핏하면 예민했던 내 사춘기에 찾아온 걱정은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난다. 그때 나는 왼쪽 다리에 내딛는 힘이 약해 허벅지부터 발까지 감싸는 보장구를 하게 되었다. 보장구 덕분에 걷는 것은 훨씬 나아졌으나 문제는 신발이었다. 내 신발 문수보다 곱절 커야 했다. 당장 맞는 게 없어 오빠의 커다란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던 날, 신발이 내 인생에 골칫거리가 될 거라 직감했다. 그러자 스치는 하나의 생각, 할머니가 되면 어쩌지.

태어나고 자란 작은 시골 동네가 당시 내겐 현재이며 미래였다. 내가 봐온 할머니란 일복인 몸뻬를 입거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무명 치마 그리고 흰 고무신을 꼭 신어야 했다. 고무신을 신지 않은 할머니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한데 동네에서 유일하게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가 된다니. 곧 들이닥치는 것마냥 혼자 끙끙 앓았다.

돌이켜보면 참 어이없는 고민거리였다. 물론 내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가 될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이 내린 처방, 생각의 전환이다. 고무신을 신든 운동화 신든 내 발이 편하면 그만이라는.

걱정은 이렇듯 싱겁게 사라지는 쓸데없는 근심이어야 한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에 전전긍긍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보낼 수 있는, 별것 아닌 소소한 것들의 집합.

한데 요즘 그렇지 않은 걱정이 있어 걱정이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 기후 뉴스들. 쏟아지는 기사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그와 반대로 비가 자주 오던 지역엔 땅이 갈라지는 최악의 가뭄이 들었다. 북극의 빙하는 갈수록 빠르게 녹고 있고, 유럽의 때아닌 폭염에 알프스 빙하도 흘러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날씨도 변했다.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우리의 여름이 아니다. 빈번한 국지성 폭우와 폭염 그리고 긴 열대야.

걱정이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물질적 풍요로움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노력은 거북이걸음이니. 이 더딤에 앞으로 우리들이 맞닥뜨릴 예측불허가 불안으로 다가온다. 지난날 고참 언니의 말처럼 걱정하면 잘 풀릴까.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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