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는 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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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지난해 어느 고교 2학년 수업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임시제목)는 ‘데칼코마니’였다”고 설명하자 학생들이 “가제는 랍스터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가제’ 뜻을 모르니 ‘바닷가재’로 받아들인 게다. 당시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 나온 장면이다.

최근에는 '심심한 사과'가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됐다. 한 업체가 사과문을 올리자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심각한 일에 심심하다고 쓰다니’ 같은 반응이 나왔다. 깊고 간절하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심심(甚深)’이란 뜻을 지루하다는 뜻으로 오해하면서 생긴 일이다.

금일(今日·오늘)을 ‘금요일’로, 무운(武運·승패에 관한 운수)을 ‘운이 없다(無運)’로 잘못 이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 모두 한자 문맹(文盲)이 낳은 촌극이다.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선 평소 낱말의 보고(寶庫)인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독서율은 극히 낮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1년간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47.5%에 불과했다. 성인 중 절반 이상이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글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75%에 이른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순우리말 뜻은 더 모른다. 어느 해 광복절 연휴가 사흘로 늘었을 때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느냐. 사흘은 4일 아니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겐 미래도 없다는 경구를 떠올리면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대하는 태도다. 단어 뜻도 모르고 항의한 이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외려 화를 낸다는 점이다. 반지성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문해력 저하의 해결책으로 독서를 제시한다. 특히 자녀의 문해력은 부모의 독서와 언어 사용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가정에서 책을 많이 읽어야 문해력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한발 나아가 한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한글 전용으로 우리말을 가꾸고 지킬 수 있는지도 숙고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처서(處暑)가 지나면서 그리도 괴롭히던 무더위가 꼬리를 내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선선한 계절에 책을 가까이하며 글맛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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