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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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특임교수/ 논설위원

노인들은 여름에 많이 돌아가시는 걸까. 지난 유월에는 신장투석을 하시던 친구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직은 79세. 떠나보내기가 아쉬워서 가슴저린 이별이었다. 엊그제는 93세 교회 권사님이 소천하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잘 끝내고 편안하게 천국으로 가셨다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올여름,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지나기에는 유난히 긴 시간이었다. ‘부디 무더위를 잘 견디고, 감귤빛 고운 가을바람에 가셨으면…’ 하였더니, 가을이다.

우리나라 보험개발원의 ‘계절에 따른 연령별 사망자 수’를 보면, 고 연령일수록 겨울에, 저 연령일수록 여름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 그러므로 노인들이 여름에 많이 돌아가시는 것은, 이해 가능한 오해다. 요즘처럼 병원 영안시설이 여의치 않던 시절의 여름 장례식은, 온 동네의 대사였을 것이다. 그러니 ‘여름철의 노인 장례식’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되었으리라. 장수의 기준은 별도로 없지만, 요즘은 80~90대 이상을 살다가 자연사했다면 호상으로 본다. 통계청의 생명표에 의하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 80.50, 여자 86.50, 평균 83.5세다. OECD 국가 평균은 81.0세다.

오늘도 어머니는 요양원의 주간보호에 결석하셨다. 태풍을 몰고 오는 비바람이 사나운 파도를 타고 올라와 보행을 막은 탓. 쇠약한 어머니로서는 일어나기조차 어렵게, 바닷가의 집은 공기가 무겁다. 실신하다시피 소파에 누워 있는 어머니가 이따금 ‘나 살려도라’고 하신다. 문득, ‘노인의 임종은 비교적 예측이 가능하다’는 간호사들의 고백이, 가슴 속에서 큰 북을 울린다.

요양병원 간호사들이 경험한 임상연구에 의하면, 임종에 임박한 노인들은 우선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전반적인 허약감이 진행되면서 ①점차 의식이 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②숨을 가쁘고 깊게 몰아쉬며 가래가 끓다가 점점 깊고 천천히 쉬게 된다. ③손발이 차가와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차 피부색이 파랗게 변한다. ④대소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며 항문이 열린다. ⑤어느 순간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처럼 호흡이 멎는다.

하지만 태어나는 모양이 저마다 다르듯, 돌아가는 모습도 개인별로 다양하다. 더 사실 것 같은데 밤새 돌아가시고, 임종을 예고했는데 갑자기 밥을 달라면서 더 사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어머니도 대략 세 번의 고비를 넘겼다. 첫 번째는 93세에 폐렴으로, 두 번째는 96세에 대퇴부 골절로, 세 번째는 100세에 기력이 다해서. 물론 1923년생이시니 온갖 전염병, 전쟁, 재난, 기아, 출산 등이 도사린 죽음의 계곡을 수도 없이 지나셨을 게다. 참, 죽으려고 주상절리에 갔다가, “9남매” 하는 소리에 되돌아오시기도…. 더욱이 17세부터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 물질을 하셨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그러므로 임종을 대하는 간호사들은 ‘오직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호흡유지와 영양공급에 사력을 다한다. 금방 돌아가실 듯 하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인명재천(人命在天) 앞에서, 임종을 단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기는, 임종 앞에 마음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단독공간이다. ‘아명허민 못사느냐’로 이 섬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제주도정이 머리숙여 대응해야 할 긴급조치가 아닐까. 아, 귤림추색의 가을은, 어머니를 보내기엔 너무도 눈부신 계절이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가을이고저.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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