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 그 아름다운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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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용천수는 ‘땅에서 솟아나는 물’로, 우리 선조들은 살아 있는 물이란 뜻으로 ‘산물’ 또는 ‘새미(샘)’, 담수인 달다는 의미로 ‘ᄃᆞᆫ물’이라고도 불렀다. 이런 순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처럼 마을의 생명수였던 용천수가 점점 소멸하고 있다.(용천수와 새미를 혼용하여 씀) 안타까움에 몇몇 용천수를 탐방했다.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물의 흐름과 함께 마을의 역사도 이어져 왔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듯 물의 흐름에 따라 식수와 빨래터, 노천탕 등 보통 두세 단계로 나누어 용도에 맞게 사용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펼치던 그 기분을 짐작하며, 합리적인 물의 사용법은 위생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또 용천수마다 물의 유래나 사용도, 위치,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여져 있어, 이름만 들어도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걸맞다. 조천지역을 보면 한 번에 두 말 정도의 물을 뜰 수 있다하여 두말치물, 물이 가늘게 나와 세물, 족박처럼 생겨 족박물, 물이 크고 많아서 장수물 등 입말로 불린 이름들이 예쁘고 정겨웠다. 그나마 이 마을의 용천수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잘 정비되어 유지하고 있었다. 이 예쁜 이름의 용천수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명도암 마을의 조리새미물은 조래천, 명도천, 안새미물통이라고도 불린다. 조리새미물은 ‘쌀을 이는 조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독특한 모양의 물통은 이끼 낀 작은 돌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스럽게 세상 이치에 역행하지 않은 채 유유히 흐르는 물속으로 두 손을 담갔다. 모세혈관 따라 오르는 청량감이 머릿속까지 훅! 차오른다.

물맛을 유지하기 위해 현무암으로 쌓아 올렸다는 동굴 속에는 여전히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나온다. 네 단계로 소개받은 새미는 실제로 다섯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 물은 식수로, 그다음엔 채소 씻는 물, 여자 목욕탕, 빨래터, 농업용수 또는 소물 먹이는 곳으로 단계마다 용도를 달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잡풀과 수초에 쌓여 늪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유구히 흘러 먼 후손에게까지 이어질 듯하다.

새미 입구에 ‘음용수로 적합하지 않다’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었지만 한 모금쯤이야 어쩌랴. 두 손을 오므려 물을 들이켰다. 순수하고 시원한 물맛이 오히려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다시 또 마음 놓고 이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준엄한 경고처럼 들린다. 새미의 소중함을 알라는 듯.

새미를 찾았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려오는데 때늦은 수련 두어 송이가 환히 웃는다.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흐르는 새미처럼 유연함이 그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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