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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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논설위원

한 선배가 있다. 그 무섭다는 남자 고등학교 1년 선배지만 왠지 만만해 보이는 형,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 그렇기도 하지만 인상 자체가 순하고 착해 보여 더 그런 선배다. 고등학교 때 정작 공을 몇 번 차지 못했겠지만, 한 시간 내내 부지런히 마사토 깔린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을 형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선배에게 시선이 가고 공감이 됐다. 저 형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본받아야지 생각했다. 내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그 선배는 여러모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는 특히 그가 아웃사이더이면서도 학문적 성과를 냈으며 인정받는다는 점을 높이 산다.

아웃사이더는 세속적 삶에 안주하지 않고 삶을 진화론적으로 완성시키려 한다. 콜린 윌슨의 주장이다. 난 그렇게까지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그저 대학에 적을 두지 않고도, 대학 정교수가 아니면서도 학문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으며 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주목해서 하는 말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적을 두지 않으면서 논문을 쓰거나 전공 책을 출판할 경우 이에 대한 직장 내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본연 업무에 따르지 않았고 업무 연관성이 덜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개방적이지만, 아직도 대학 구성원이 아니면 학자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고, 전문가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등 교육은 말할 필요 없고, 단행본이나 논문, 특강 등으로 사회와 공감하고 공유하며 사회참여와 환경운동으로 도민의식의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 선배는 대표적 아웃사이더라 칭해도 손색없다.

만일 그 누가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학문연구에 탁월한 성취를 보였다면, 이는 그 자신이 엄청나게 노력했음을 뜻한다. 그 외로운 싸움에서 안타깝게도 건강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웃사이더가 누구나 가능하지는 않다. 사회와 불화하여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고 폐쇄적 삶을 산다. 기존 형식과 관행에 타협하지 않아 소위 ‘꼬인 학문’을 한다고 배척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배는 평소 주장은 확실하지만 고집스럽지 않아 상대방 거부감이 없었다. 게다가 특유의 눈웃음으로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했고, 어려운 학문적 용어를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아웃사이더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그 선배님은 예고 없이 그가 즐겨 찾던 답사현장에서 이번 생을 마감하고 레전드가 되셨다. 속담대로 라면,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한 명도 안 온다. 그런데도 내가 알기로 도내 최초로 9개 시민사회, 교육, 환경단체 합동으로 환경시민장이 진행되었다. 그래! 제주는 살아있다. 제주가 아직은 쌩쌩하다. 그 선배님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존재하고, 이분들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풍토가 지역사회 저변에 깔려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으랴.

제주에는 그 형 같은, 그 선배 못지않은 아웃사이더가 많다. 비단 학문 분야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시민사회, 환경운동, 생업활동 현장에서 뽐내거나 드러내지 않고, 또 그럴 의도나 바람도 없이 그저 묵묵히 하던 일만 죽어라 하는, 내공 충만한 재야의 고수들이 구석구석 숨죽여 계시다. 이분들이 바라는 건 ‘제주 사회의 지속 가능’ 하나다. 모든 사물의 지속 가능성에 기본은 건강이다. 변방의 아웃사이더들을 격하게 지지하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견뎌내시길 간절히 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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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2022-09-07 20:10:34
그 아웃사이더는 레전드입니다. 혼자서 엄청 고생하며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그의 성과는 대단합니다. 제주의 자연 곶자왈을 지켜야합니다. 레전드 송시태 박사님, 송시태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곶자왈에 그분의 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곶자왈 보전 제주 자연 보전의 유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