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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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존엄사 인정의 계기가 된 건 ‘카렌 퀸란 사건’이다. 1975년 21세였던 카렌은 약을 먹고 친구 생일 파티에서 술을 마시다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6개월 후 부모는 딸이 품위 있게 숨을 거둘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으나 의사는 거절했다. 이 문제는 법정으로 옮겨졌고 지방 법원은 살인 행위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뉴저지주 대법원은 이듬해에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 보호 관점에서 호흡기를 떼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 카렌은 인공호흡기 제거 후 10년을 더 살다 숨졌다.

존엄사는 인간의 생물학적 연명보다 정신적·인격적 생존이 중요하다는 데 바탕을 둔다. 안락사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소생 가능성 없는 혼수·뇌사상태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떼는 게 골자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2월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됐다. 환자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으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걸 말한다.

국내 존엄사 문제는 2009년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김 할머니 사건’으로 이슈가 됐다. 가족이 평소 할머니의 뜻을 존중해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해 호흡기를 뗐다.

이후 국민의 인식에도 변화를 보인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이 성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법 찬성비율이 76.3%로 나왔다. 5년 전 같은 조사에선 50%였다. 존엄한 죽음 없이 품위 있는 삶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하며 품위 있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보편화하는 듯하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도내 연명의료 유보를 결정한 환자는 2018년 520명에서 2019년 965명, 2020년 1080명, 지난해 1369명 등 해마다 증가세다.

제주사회가 유교 전통은 물론이고 지역 공동체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걸 감안하면 존엄사에 대한 도민 인식 변화를 가늠케 한다. 죽음의 질을 따지는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고, 가족들에게 안기는 경제적 부담도 고려됐을 터다.

생을 마감하는 걸 도와주는 게 의료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다만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치료중단 정도는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수용할 때도 됐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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