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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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2019년 12월부터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해 왔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오랫동안 잘 버텨오다 한순간에 코로나에 감염되어 입원까지 하게 됐다. 4차 예방접종까지 마쳤으니 괜찮겠지 하는 방심이 화를 자초한 듯하다. 설령 코로나에 감염된다고 해도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감기 수준의 고통으로 끝난다고 주위에서도 방심을 부추긴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 3일째부터 목이 간지럽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즉시 가까운 동네 의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양성이라며 집에서 격리 치료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먹는 치료제에 대해 문의해 봤더니 정확한 제공 원칙은 제시하지 않고 제공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뿐이었다. 기저 질환이 있는 노약자는 해당이 되는 게 아니냐며 다시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 살아날 방도를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 받고, 영양제도 도움이 된다기에 수액 주사로 맞았다. 이튿날부터 2, 3일 기침이 심할 뿐 영양제 덕인지 몸 상태는 좋았다. 5일째가 되자 기침 탓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기력도 소진해 갔다. 꼼짝 못 할 정도로 자리에 눕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엄습했다. 할 수 없이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빈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견디었다. 이튿날 다행히 입원실이 나와서 입원할 수 있었다.

그때 입원실이 없다며 내쳐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요행이랄까. 일주일여 입원 치료를 받으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후유증은 좀 남았다. 다시는 앓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통의 경험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코로나 감염 환자도 많이 오갔다. 나보다 훨씬 심각해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도 있었다. 환자의 고통도 애처로웠지만,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고통은 더 안쓰러웠다.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며 환자와 함께 앓았다. 그 처절한 모습은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가래가 끓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 숨이 잦아들 듯 아슬아슬한 고비를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되풀이했다.

코로나 감염으로 고통을 겪고 나니 그 위세가 대단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회복된다고 해도 그 후유증은 오래 남는다. 건강한 사람이 감기 수준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코로나 대책이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거리 두기 같은 예방책이 사라지면 노약자는 더 위태로워진다. 그렇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리하는 정부나 국민이나 긴장의 강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한순간의 방심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생명에 차등은 없다. 노약자의 생명이라고 하찮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로 경제적 지원금을 받고, 또 어떤 이들은 코로나로 생명을 잃는다. 경제적 어려움은 지원금으로 보상받는다지만, 생명의 대가는 어떤 보상이어야 할까? 백신 접종도 중요하지만, 코로나로 숨지는 사람이 없도록 노약자에 대한 치료 대책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먹는 치료제의 공급도 확대해야 한다. 그 공급 업무 또한 불평과 불만이 없도록 투명한 원칙으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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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2-09-19 00:15:14
윤가의 과학방역은 각자도생.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국민의 삶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 뿐이구나. 코로나 너무 아프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