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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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머리를 감고 일어나 수건을 찾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잡히질 않는다. 지난번에 사용한 후 다시 걸어 놓는다는 걸 깜박했었나 보다. 혼자 구시렁거리며 수건이 담긴 서랍을 열다가 말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뜻밖에 반가웠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호텔식 수건 접기라는 영상을 보았다. 호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따라 해보기를 권장했다. 호텔의 정갈하고 예쁜 이미지가 떠올라 수건 한 장을 꺼내 영상 속 모델을 따라 배웠다. 평소에 나의 수건 개는 방식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내가 사각으로 툭툭 접어 개었다면, 호텔 방식은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어디에 놓아도 공간 속 여백의 미를 살리는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수건을 꺼낼 때마다 서로 뒤엉켜 복잡했었는데 적은 시간을 투자해 좋은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 없는 정보까지 알게 할 때가 적지 않다. 거대 기업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악하고 틈틈이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한다.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화려한 광고로 마음을 빼앗아 충동구매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몇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검색하다 보면 어깨가 쑤시고 목도 뻣뻣해진다.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의사가 목디스크라는 진단을 내리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신처럼 여기며 산다. ‘폰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궁금해하는 모든 정보가 기기에 들어 있어, 휴대폰만 있으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보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 가면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사람은 거의 없다. 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검색한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휴대폰이면서도 툭하면 잃어버리는 현상은 뭘까.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내 몸처럼 아끼는 나 같은 물건을 잃어버리다니, 좀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뇌는 의식하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사물을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면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뇌와 설정하려는 뇌의 시스템이 서로 충돌한다. 따라서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약속을 깜박하고, 해야 할 일도 잊게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휴대폰을 멀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좋은 점 뒤에는 반드시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인 법이다. 문명의 변화를 받아들이되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때 효과가 있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지 상상해 보자. 옛 추억이 떠오르거나 어제 들은 말이 생각날 수도 있다. 당장 뭔가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된다. 그저 스쳐 가는 경치를 바라만 봐도 좋다.

예술가들이 여행을 자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에 창의력과 영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란다.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우려 하기보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놔둘 때 저절로 정리되며 다시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외부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시간, 스스로 정리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진정한 여백의 미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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