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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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경 수필가

몇 달째 즐겨 읽는 신문 연재물이 있다. 제목은 <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이라는 특집이다. 매회 다양한 직업의 필진으로 바뀌니 글마다 개성이 있다. 여기에는 독자가 응모한 글도 함께 실린다. 오늘은 사랑하는 우리말로 ‘짓다’가 나왔다. 직업란을 보니, 이 분은 건축가이다. ‘짓다’는 말이 이렇게 여러 경우에 쓰이는 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는다. 우리의 의식주를 다 맡아한다. 더구나 시도 짓고 글짓기하고 노래를 지어 부른다. 예술까지 관장한다. 그런가 하면 약도 짓고 죄도 짓는다. 빛과 어둠을 다 가졌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우리말이다.
독자들에게서는 추억 속에 그리운 우리말 응모가 줄을 잇는다. ‘시나브로’ ‘손맛’ ‘고샅’ ‘새벽밥’ ‘장독대’ ‘장작불’ 등 하나같이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정감 어린 말들이다. 자기가 특별히 그 말을 사랑하는 사연까지 곁들여 있어, 절로 우리말의 구수한 정서와 묘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투리는 처음 들으면 낯설어도 역시 우리말이라  금방 귀에 익게 된다. 근래에는 점점 지방 사투리가 정겹게 들린다. 나는 줏대 없게도, 경상도 사람과 얘기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경상도 말이 나오고 전라도 친구와 말할 때는 전라도 사투리를 따라 한다. 같은 말을 쓰면 바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처럼 친밀감을 갖게 되니까. 표준말은 단정하고 예의 바르긴 해도 푸근한 맛은 덜하지만 지방 사투리에는 아주 찰지고 구수한 정감이 느껴진다. 
우리말은 어쩌면 이름도 걸맞게 붙여놓았는지 병아리는 병아리에 꼭 맞고 강아지는 강아지에 딱 들어맞는다. 다른 말은 있을 수 없다. 신기하고 맛깔스럽다. 꾀꼬리. 얼마나 꾀꼬리 소리 다운가. 게다가 우리말은 묘사의 섬세함을 나타나는 능력도 풍부하다. 색깔이 ‘파랗다’ 하나만 해도, 파르스름하다, 파릇하다, 파르족족하다, 파르무레하다 로, 맛이 ‘달다’를 달콤하다, 달달하다, 달착지근하다 로 세밀한 차이까지 표현해낸다. 언어를 조탁彫琢해서 쓰는 시인들은 글자 하나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토씨 하나가 전혀 다른 뉘앙스를 만드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 않나.
이 소중한 말을 고운 말 바른말로 쓰면 좋겠다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어릴 때부터 비속어에 대한 거리감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던 아버지 영향도 있겠지만, 자라면서 욕지거리는 들어도 못 보았고 써보지도 않았으니 내가 은연중에 말씨에 관해 결벽증일까? 근래에 이상한 말들이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였다. 좌중이 까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 혼자만 도통 영문을 몰랐다. 그들은 되풀이 ‘자만추’를 주장했다. 그게 무슨 뜻인데 저렇게 좋을까? 뒤늦게야 그것이 긴 말의  머리글자만 모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런 만남의 추구’를 신세대들이 그렇게 줄여 쓰고 있다. 어른들도 젊은이들의 말을 써야 젊은 축에 든다고 여기는지 비판 없이 따라 쓴다. 
물론 말은 유기체여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새로운 말이 계속 생겨난다. 그런다 해도 장난삼아, 우리말을 왜곡해서 쓰는 경우를 만나면 영화 <말모이>가 떠오른다. 우리의 윗대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일제 강점기, 일본의 혹독한 우리말 말살정책에 항거해서 쫓겨 다니며 숨어서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그 절절한 우리말 사랑을 지금의 우리는 이어갈 의식이나 있는가.      
얼마 전부터 T.V로 ‘우리말 겨루기’ 라는 퀴즈 프로를 보고 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려나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시청을 하는 동안 기가 푹 죽는다. 나는 매회 연전연패를 거듭한다. 우리말에 이렇게 무지한 스스로가 부끄럽다가도 한편 우리말의 말맛에, 묘사의 탁월함에 새삼스레 감탄한다. 나에게 ‘우리말 겨루기’는 ‘우리말 우러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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