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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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 논설위원

백록담은 심장이다. 오름왕국 곳곳으로 보내는 순환계다. 심장이 멎으면 오름왕국도 멎는다. 그래서 심장은 생명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백록담이다. 백록담은 길고 긴 생명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어간다.

백록담 심장은 이렇다. 화산분출로 형성된 타원형 암질 덩어리다. 조면암과 현무암 재질이다. 서쪽은 점성이 높은 조면암이다. 그래서 기암절벽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동쪽은 현무암질이다. 점성이 낮아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심방과 심실 기능처럼 말이다.

심장은 해발 1950m에 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래서 왕좌다. 능선과 하천을 거느린 발원지이며 출발지다. 해안까지 경사를 이루며 곡선으로 뻗어 나가는 기복 지형의 꼭짓점이다.

심장으로부터 쏟아내는 혈액의 대동맥은 크게 3개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장구목과 연결된 관음사와 성판악이다. 또 하나는 윗세오름으로 이어진 영실과 어리목이다. 나머지 하나는 방에오름을 넘는 돈내코다.

그러하기에 옛 선인들도 심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고지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기록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동암과 서암으로 구분하거나 신선들이 노는 곳으로 봤다.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동여비고』에서는 ‘방암’이라고 했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그 형상이 네모반듯하여 사람이 다듬어 만든 것과 같다고 했다. 1709년에 제작된 『탐라지도병서』에는 동암과 서암으로 구분했다. 이렇듯 심장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신성시했다.

더 나아가 이야기로 형상화했다. 예를 들면 신선이 탄 흰 사슴이 물을 먹으러 오는 곳, 신선들이 평화롭게 사는 곳으로 묘사했다. 흰 사슴인 백록은 한라산의 풀을 뜯어 먹고 정상의 물을 마시고 신선들은 그 백록을 타고 논다. 또한, 심장으로부터 이어진 혈관은 좋은 지세를 형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심장의 고동은 남다른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그 울림에 현인이나 문학인도 여지없이 현혹됐다. 『남명소승』에서 임제는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구나. 구덩이같이 함몰돼 못이 됐구나.”라고 읊었다. 1930년 백록담을 밟은 이은상은 더 격하게 부르짖었다. “아! 지척의 정상, 최후의 돌바닥 끝을 밟고 서자 약속한 듯이 두 팔을 뽑아 높이 들고 만세! 만세! 한라산 만세! 외치고 또 외쳤다.” 그렇게 공명했다.

그렇다. 백록담은 심금을 울리는 치유의 심장이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 놀라운 힘에 모두가 감탄한다. 심장의 혈액, 치유의 카타르시스를 뿜어 해안까지 보낸다. 그 의미를 이렇게 읊는다.

‘청명한 하늘에 닿을 듯/ 맑은 정화수 떠놓은 듯/ 하얀 사슴 뛰어노는 듯/ 웅장한 한라산 꼭대기에/타원형으로 놓인 백록담/ 모두가 동경하는 상좌(上座)/가장 먼저 해를 맞고/ 가장 늦게 노을 보내며/한순간 한순간도/ 가벼이 할 수 없는 일상/ 하루를 마무리하는/외로운 최정상의 자리

곳곳으로 힘차게 뻗은/ 오름 능선의 최정점/ 하얀 포말 토해내며/ 아래로 달리는 물의 발원지/ 땅 밑으로 흐르는/ 수맥과 지맥의 꼭짓점까지/원점으로 모아드는/ 세상 이치 꿰뚫은 자리/ 구름도 머물다 사라지고/ 고였던 물도 채웠다 비우고/ 울부짖던 바람도 돌아서고/ 동장군도 왔다 떠나고/사람들마저 오고 가고/ 모두에게 열린 무소유 자리

밀어닥친 폭풍과 맞서/ 부딪히고 깨지며/ 이겨낸 암벽의 상처들/ 녹아있는 고난과 역경/정상의 무게감 서린 자리/ 너와 나 하나로 묶어져/벗어날 수 없는 연륜/ 어머니의 지혜 담긴/ 오름왕국의 심장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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