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형 인간 되기, 주인 되기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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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아,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자리 놀음하는 수준이에요. 교수님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제 알겠어요.” 회의에 다녀온 지인은 회의를 주재한 분에 대해서 이렇게 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서 전해 들은 참석자의 태도와 반응, 현안 인식과 논의된 해결 방안 등은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예견된 일이므로 호들갑을 떨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걱정을 나누다 보니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간담회 자리에서 스치듯 통성명을 한 일이 있었지만, 내내 특별한 친분을 쌓을만한 일이 없었다. 우연히도 일 년 정도 공적인 업무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도, 각별한 기억이 남을만한 일은 없었다. 그렇게 먼발치에서 보았던 탓인지, 지도자의 면모를 확인할 만한 계기도 없었다. 그래서 몇 해가 지난 후에 선출직에 나선 그분이 먼저 연락했을 때 완곡하게 거절했다. 바라는 것도, 기대되는 것도 없어서였다. 하지만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짧은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의례적인 출마의 변을 경청한 뒤 이렇게 물었다. “공익형과 사익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공익형은 일이 목표인 분이고, 사익형은 자리가 목표인 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이신지요?” 복잡한 심경을 담은 고언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공익형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공익형 지도자, 선거에 쓰기 좋은 말이네요.” 명쾌한 대답과 함께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하는 모습에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노자는 명품을 만드는 차이가 디테일에 있다고 말했다. 디테일은 얼핏 덜 중요해 보이는 세부적인 것이지만, 그래서 디테일하다는 것은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다’라는 것을 뜻한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억지로) 일을 하지 않고,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핑계 대지 않고, (자신이) 만든 것이라도 소유하지 않고, (누구든) 위하지만 부림을 받지는 않고, 공적을 이루어도 (자기 것으로)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일하는 걸 목표로 바지런을 떤다고 공익형 지도자는 아니다.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라는 디테일을 놓치면 노자가 그만두라고 한 ‘억지로 하는 일’을 할 우려가 높다. 옳은 일이라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강제하고, 핑계를 대거나,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 결과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바로 그렇게 모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 돕는 사람이 ‘성인’이다.

‘성인’은 요즘 말로 주권자이다. 주권자인 우리는 노예처럼 누군가에 대해 푸념하기가 아닌 ‘공익형 인간 되기’에 나서야 한다. 이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은 사익형으로 사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 담대하게 맞설 용기를 내는 일이야말로 공익형 인간 되기, 곧 주인 되기의 첫걸음이다. 그것은 말을 앞세우거나 보잘것없는 공적을 자랑삼는 경박함을 배격하고,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게 따져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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