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의 생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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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단출한 가족이지만, 식탁주위를 5명의 손주가 둘러서서 노래를 부른다. 사춘기 묵직해가는 장손의 목소리가 있고 아직은 여린 손녀의 목소리도 있고 화음이야 어떻든 성심껏 부르는 모습에서 흐뭇함을 만끽한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부모님 세대를 말해서 무엇할 것인가. 나 자신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 생신에 미역국이라도 잘 챙겨드렸는가 돌아보면 죄스럽기만 하다.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욕망에 자식들 닦달하고 어렵게만 했지, 생일이라고 따뜻한 음식 따로 챙겨주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 했는데 견디다 보니 아픈 상처들도 좋은 추억으로 갈무리되고 예가 천당이 아닌가 싶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를 즈음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위해 글을 지어 차례로 낭독하고 고이 접어 성심껏 준비한 선물과 함께 올리는데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겠는가.

중학교 3학년 학생 간부로서 훌쩍 커버린 장손의 선물은 예외였다. 매년 같은 형식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하는 축원과 귀여운 선물을 성심껏 내밀었는데 예년과 달리 장손의 손에는 두툼한 책 한 권이 들려있다. 선물한 책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이다.

장손을 얻은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양파 수확에 인부를 독촉하면서도 병원에 간 며느리 소식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첫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오고 일은 마무리를 못 하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아비 닮은 아기가 산모 곁에 누워있다. 예정된 산일을 조금 지나서인가 새까만 머리털이 귀를 덮은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기는 하다.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지금도 묻지를 않았지만,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근래에는 점점 피곤해지는 눈 때문에 책장을 쉽게 덮는다. 데일 카네기는 1888년 미국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손꼽히는 선구자로서 처세, 자기관리, 화술, 리더십 등 자기개발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소개하고 있다.

400페이지를 넘기는 내용 때문인가 활자체가 작아 읽기가 거북하다. 손자의 성의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훗날 손자가 이 책을 전부 읽을 수 없다면 요점을 표시해서 시간을 줄여 주려고 나름대로 좋은 문장 밑으로 선을 그었다.

’우리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려 하지 말고 눈앞에 분명히 놓여있는 것을 행해야 한다.‘ ’당연히 내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해서는 안 된다.’ ‘바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정신질환 치료제.’ ‘사소한 일에 신경 쓰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부당한 비판은 칭찬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책을 읽을수록 공감하고 내가 걸어온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건지 오는 겨울이 걱정인지 초가을 풀벌레 소리가 창가를 떠나지 않는다. 독서하기에는 좋은 계절이다. 젊은 날 책 몇 권은 넘겼는데 오랜 추억이 되었다. 모든 정보가 손안에 쥐고 있으니 바쁜 시대 누가 책을 앉아 읽겠는가만은 그래도 올가을이 다 가기 전에 책 한 권 읽으면서 좋은 계절 보냈으면 좋겠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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