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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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자신을 마케팅할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인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장군처럼 위민(爲民)의 마음과 불굴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선거전에 출사표를 던지고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선거전이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면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지지자들에게 ‘일당백, 일당천’의 정신을 주문한다.

백척간두의 상황에선 그 유명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어구를 즐겨 사용한다. 자신이 호남 출신임을 강조하거나, 호남의 지지가 필요하면 필살기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를 찾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장군의 어록을 소환했다. 지난 7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앞서 ‘당원권 정지 6개월’에 이어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추가 징계를 받자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이란 말을 꺼냈다. ‘명령 없이 경거망동하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탈당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 있기를 당부했다.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일본군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병사들의 긴장감이 커지자 “명령 없이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산처럼 신중하여라(勿令妄動 精重如山)”라고 했다. 왜선이 보이면 당황해 싸움을 그르칠까 봐 마음 점검을 한 것이다. 이 같은 리더십으로 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을 거뒀다. ‘23전 23승 신화’의 시작인 셈이다.

이 전 대표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록을 통해 정치적 수세에 몰린 자신의 처지를 이순신 장군에 빗대 정치적 재기의 결의를 다진 것으로 읽힌다. 그래도 그가 ‘경거망동’을 언급한 것은 아이러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뒤 전투에 임한다. 이른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다. 명량해전도 지형과 조류 등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했기에 세계 해전사에 기념비적인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입으로만 싸우려고 해선 승산이 없다. 어록은 행동이 받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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