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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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 수필가

집이 경기도 고양시 원흥역에 있어 외출할 때는 대개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한다. 3호선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대화와 오금을 잇는 X자형 노선이다. 한강철교를 전후해 일산 방향으로는 나이 든 사람이 많고 강남 쪽으로는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한다.

여느 전철과 마찬가지로 지하노선이 대부분이지만 지상을 달리는 구간도 있다. 대표적인 지상 구간은 삼송-지축을 잇는 선인데 내다보이는 풍경이 계절을 막론하고 을씨년스럽다. 마른 하천, 끝 모르게 뻗은 전신주, 짓다만 빌라 건물, 멈춰서 있는 고가 크레인...

오랜만의 외출이다. 종로3가에서 약속이 있어서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아 눈을 감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짙은 어둠이 나라 곳곳에 땅거미처럼 내려앉았다. 사회가 기우뚱했고, 개인의 삶이 흔들렸다. 몸도 마음도 다들 지쳐가고 있다. 그 힘든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보통 사람들의 시름도 깊어져 갔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갇혀 지낸 지 2년여가 되간다. 외출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반 강제 모양새는 원한 것이 아니어서 마뜩찮다. 차가 지축역에 이르렀을 때다. 칸과 칸을 연결하는 통로 문을 밀치고 한 사람이 들어선다. 실눈을 떠보니 차림새와 모습이 수상쩍다.

장애가 있는 떠돌이 행상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온 몸의 관절이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용케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틱 장애가 있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더듬더듬 말을 꺼낸다. 그런데 그 흔한 인사말도 없고 밑도 끝도 없다. 몇마다 말이 전부다. “여, 여러 선생님, 도, 도와주세요. 너무 힘듭니다. 여러분 제, 제발요...”

순간 전철 안에 알지 못할 냉기기 감돌았다. 건너편 마주 앉은 승객들은 애써 눈길을 피하는 모양새다. 거리나 전철에서 구걸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마주치면 늘 마음이 무겁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움을 건넬까 말까. 이들을 관리하는 조직이 있다는 말도 있던데…. 에이 그만 두고 그냥 모른 체하자. 그것이 마음 편하더라.

바로 그때다. 옆 사람이 몸을 움찍거리며 부스럭댄다.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다. 아주머니가 혼잣말을 한다. “보통 사람도 힘든데 얼마나 힘들까?” 그러면서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 그 사람에게 건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 역시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며 안주머니 지갑에 손이 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행히 지갑 안에 종이돈이 몇 장 집힌다. 에이 모르겠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그 사람에게 돈을 건넸다. 그러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며 그 사람에게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은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고마움을 표한다. 승객들은 따듯한 눈길로 그 사람을 쳐다보기도 하고, 개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손님도 있다.

웬일일까? 순간 전철 안의 조명이 한층 밝아진 듯했다. 우리들 마음에도 반짝 불이 켜졌다. 전철의 속도가 한결 느려지는 품새가 역이 가까워지는 모양이었다. 스피커에서 오늘따라 정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음 역은 연신내, 연신내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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