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 가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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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결실의 계절이라 그럴까. 모든 열매라는 이름의 둥근 것들에 속을 꽉꽉 채우려는지 햇살도 마지막 달음질로 숨 가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가을볕이 드세다, 절기 따라 장난처럼 오가는 바람결은 선선하다가 때론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도 한다. 매스컴에선 기온차가 크니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을 기상예보 말미마다 빠뜨리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비대면에, 거리두기를 오래 한 탓일까. 제한이 풀리면서 곳곳에는 각양각색의 행사로 출렁인다.

초등학교라 바뀌기 전, 국민학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을 때다. 가슴에 단 하얀 손수건과 함께 학교생활이라는 새로움 안으로 발을 들였다. 고운 계절과 나란히 그곳 운동장에서 내 유년의 시간은 몸도 마음도 동글동글 커갔다. 달포 전, 그곳에서 동문들과 한마음 체육행사를 가졌다.

유년의 가을, 그때도 하늘은 맑고 고왔다. 높이 걸린 만국기처럼 숱한 꿈들을 내걸고 운동회를 했었다. 그리고 졸업 후 반세기를 더 넘긴 얼마 전, 동문 행사에도 하늘은 어린 날의 그때처럼 고왔다. 다만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재재거림 대신, 반백을 훌쩍 넘긴 펑퍼짐한 체구의 중장년들의 굵직한 웃음소리로 모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것이 달랐을까. 체면도 격식도, 엉거주춤한 행동에 부끄러움도 내려놓고, 너나없이 같은 색깔의 웃음을 왁자하게 쏟아내는 바람에 운동장 한 모퉁이가 휘청했다.

한 교문을 썼다는 것이 세월의 무게를 벗고 이런 편안함으로 다가와 결속력을 갖는다는 것이 새삼 경이롭다. 어릴 적, 커 보이기만 했던 그 운동장에서 몸놀림은 둔하여 제각각이지만 오랜만에 동심을 꺼내 든 동문들 모습은 세월마저 빗긴 듯 밝다.

문득 내 유년, 파란 하늘빛과 대비되며 감나무에 달린 주황색 감이 유난히도 곱던 때다. 어머닌 그걸 항아리에 담아 운동회 때 주신다고 며칠을 우려내었다. 점심때 보자기를 풀자 도르르 굴러 나온 감을 얼른 줍고 한 입 베니 단물이 흘러내렸다. 흘린 자국 따라 길게 혀를 뺐던 기억이 새롭다. 불량식품이라 말하는 것도 없어서 못 먹던 내 유년의 시간. 운동회는 입의 호사를 누리는 날이었다. 솜사탕, 오징어게임에서 달고나로 알려진 떼기, 색색의 과자 등.

볼거리도 딱히 즐길 것도 없던 시절, 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나 매한가지였다. 운동장은 사람으로 꽉 찼다. 인기 종목 중 하나가 달리기다. 아이들의 이동방향으로 어른들도 같이 움직이며 손바닥에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열열 응원이다. 달리는 아이도, 좀 더 아이와 가깝게 자리하고픈 가족들의 목소리도 결승선에 가까울수록 기대만큼이나 소리는 높아진다. ‘ᄃᆞᆯ으라, ᄃᆞᆯ으라,’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1, 2위를 다투기라도 할 때면 아쉬움에 ‘미쳐불라, 확 미쳐불라’ 며 목청은 한껏 부푼다. 아이의 발놀림보다 더 바빴던 부모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아스라하다. 생각은 이내 옛 추억, 결승선 어느 언저리에서 웃음으로 피더니 이내 눈가로 촉촉하게 진다.

이쯤이었을까.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오종종 머리 맞대 앉아 공깃돌놀이 하던 곳이. 공깃돌과 친구들 웃음소리 만발하던 곳. 나이 많은 내가, 나이 어린 나를 만나는 곳.

생각은 오래도록 내 유년의 시간에 머물며 되새김질이다, 무심히 올려다 본 하늘가. 파란색 안으로 구름 한 덩이 게으른 하품을 하다 멋쩍던지 바람의 모서리에 채이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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