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의 최악 상황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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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힘들 때 웃는 자가 바로 일류”라는 말은 2019년에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이후로 ‘명언’이 되었다. 이 말을 한 출연자의 ‘고단한’ 인생역정과 맞물리면서 사회적 공감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말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명언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영국 대문호가 ‘일류’를 말했는가 하는 의심이 들지만,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리어왕(The Tragedy of King Lear) 4막 1장에서 비슷한 구절을 찾을 수는 있다.

동생에게 모함받아 쫓겨난 신세를 한탄하던 에드가는 눈이 뽑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 글로스터와 만난다. 그제야 입버릇처럼 말하던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를 깨닫고 방백한다. “그리고 아직 더 나빠질 수도 있는데. 최악은 아냐, 이게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은 말이지.” 이 대사처럼 결말은 더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렇게 보면 앞서 언급한 ‘일류’의 최악 상황 대처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니 이 대사가 해당 발언의 원조는 아니다.

2012년에 발행된 영화잡지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1997년 개봉작 ‘넘버3’에 해당 발언이 등장한다. “괴롭고 힘들 때 우는 놈은 3류다. 이 악물고 이겨내려는 놈은 2류다. 그냥 힘들어도 웃어라. 그놈이 최고다.” 극중 마동팔 검사로 분한 최민식 배우의 대사란다. 오래전 작품이라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최근 몇 개의 대본과 시나리오, 영상을 찾았는데, 정작 해당 대사는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21세기를 바라보는 삼류인생을 다룬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대사는 따로 있다. “너, 내가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니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 자신의 주변에서 회유와 협박의 기회를 노리는 도강파 넘버3 태주에게 마동팔 검사는 이렇게 경고한다. 이에 질세라 태주는 “검사님은 뭐든지 열심히 해보십시오.”라고 대꾸한다. 스님의 선문답 같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진 이를 높이지 말라. 백성들이 다투지 않을 것이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말라. 백성들이 훔치지 않을 것이다. 바라는 바를 드러내지 말라. 민심이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물론, 일반인의 욕구와 지도자의 이상에 대해서도 “뭘 하든, 하지 마라.”고 말한 것이다. 낯설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처음 운동을 배울 때 흔히 듣는 “힘을 빼세요.”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굳으면 다치기도 쉽고, 제대로 배우기도 어렵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뭘 하든, 하지 마라.” 다음에는 “다른 사람 돈 뜯어먹었으면 다 갚아주고, 사람 팼으면 치료해줘.”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므로 “네가 말하는 건달짓이 옳건 그르건”이 생략된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게 변명이건 정당성이건 힘을 빼라고 노자는 말한다. 마동팔 검사의 대사에 따르면 “니가 뭘 하든 한 번 해봐, 대신에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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