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상념을 건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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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가을의 손짓을 느꼈을까, 불쑥 마음 따라서 나섰다.

이른 아침 잠시 달려 원당봉 먼발치에 주차하고 오르막 시멘트 길에 들어선다. 지팡이 하나 짚으며 달팽이걸음으로 걷는다. 언제 뒤따랐는지 한 청년이 성큼성큼 앞장서더니 어느새 멀어진다. 그에게는 운동이요 내게는 자연과의 대화다. 잠시 뒤쫓던 눈길이 젊었던 시절을 접고 내면으로 향한다. 이제 당연한 걸 당연하게 수용할 만큼 세월이 흘렀나 보다.

원당봉 분화구에 자리한 문강사 입구에 다다르니, 앞마당 연못을 에워싼 천막들이 보인다. 전날 다문화대회가 열렸던 모양이다. 천막마다 천태종 여러 사찰 이름과 소속 다도회 명칭과 차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부착되었다. 불도들이 갖가지 차를 마시며 연꽃 같은 대화로 번뇌를 훌훌 털어버리는 풍경이 그려진다.

잠시 적혀있는 차 이름들을 더듬는다. 황차, 금화규꽃차, 말차, 개다래 발효차, 가바홍차, 침향차, 연꽃차, 아로니아, 목련차, 봉황단총, 대홍포, 보이차…. 낯선 이름이 태반이다. 이 중에서 친숙한 건 보이차다.

2005년 어느 날 동료 장학사가 사무실로 다기와 보이차를 가져와 알맞게 우리고 시음하게 하였다. 앙증맞은 청자 찻잔에 담긴 맑은 연갈색 차가 먼저 눈맛을 돋웠다. 긴 향과 더불어 엷은 단맛이 혀를 감돌다 목젖을 지나는 열감이 좋았다. 몸이 찬 체질에 좋다고 하여 시나브로 나는 보이차 마니아가 되었다. 서너 해 몇몇 브랜드의 숙차와 생차를 구매하며 음료수처럼 마시다 보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면증이 찾아들어 서서히 멀어져갔다. 지인들과 나누기도 했지만 지금도 여러 편 시렁 위에서 잠자고 있는 걸 볼 때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시계방향으로 야자매트 깔린 가파른 길을 따라 원당봉 정상으로 향한다. 사늘한 솔바람이 마중한다. 몇 년 전 이곳의 해송들도 재선충에 감염되어 여러 그루 숨을 놓았었다. 그때 시련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푸름을 키워가는 소나무들이 길손에게 생의 매 순간이 꽃이라고 이르는 듯하다. 근처 솔밭에서 솔가리와 솔방울을 모아다 굴묵을 때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스친다.

숨을 고르며 쉬엄쉬엄 걸음을 옮기노라니 정상에 이른다. 북쪽의 검푸른 바다와 눈인사하고 남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봉긋봉긋한 오름들이 다정히 어깨를 겯고 있다. 그 뒤로 어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한라산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감정에 묻힌 것들은 눈감아야 더 선명해지거늘.

정인수 시인의 ‘원당봉에서 부르는 새천년의 노래’ 시비를 읽는다. ‘새천년이 열리는 감동의 순간입니다.’란 행이 있다. 그랬지, 전 세계가 달떴던 순간이었지. 시간만큼 위대한 힘이 또 있을까. 생은 시간 속에서 굴곡지고 새롭게 태어나고 다시 해석된다. 주어진 유한성 앞에서 인간은 더 겸손해야 하고 열심히 행복을 일궈야 할 당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불현듯 어디서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층 건물의 14층에서 떨어진 사나이가 7층 창가를 바라보는 친구를 발견하고 하는 말에 숨이 멎는다. “여보게, 아직은 끄떡없어!”

맞아. 길게 보면 다 한순간이지. 마지막까지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야말로 내가 품고 싶은 보석이다. 아직 살아 있으면 되는 거야. 털머위꽃이 끄덕이며 노란 미소로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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