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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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중고교 시절 어쩌다 부두에 가면 기대되는 볼거리가 있었다. 체격이 단단한 노동자들이 눈길을 잡았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게 ‘가데기’로 친숙한 그들의 어깨걸이 작업은 신기에 가까웠다. 조그만 갈고리를 이용해 각종 화물을 어깨에 얹어 선박과 육상에 걸쳐 놓은 나무 발판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면서 짐을 날랐다. 지금은 모든 것이 기계화되었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해도 맨몸으로 모든 화물을 감당했다.

하지만 이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다. 항운노조 소속이어야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결속력도 대단했다. 주먹들도 부두에선 어깨에 힘을 주지 못했다. 제주항운노조 등 전국 항운노조는 1898년에 결성된 국내 최초의 부두 노조인 함경남도 성진부두노조의 맥을 이어받아 전국 항만에서 노무 공급권(근로자 공급사업 허가)을 행사하고 있다.

▲대법원 특별2부가 지난달 27일 제주도항만노동조합(제주항만노조)이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주항 근로자 공급사업 신규 허가 거부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피고 보조참가인인 제주도항운노동조합(제주항운노조)의 상고를 기각했다. 항만노조도 화물 하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법적 판단을 얻은 것이다. 이로써 항운노조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부터 제주항에서 독점해왔던 화물 하역 작업에도 균열이 생기게 됐다.

이 소송은 2019년 설립된 복수노조인 항만노조에 대해 제주도가 노무 공급권 허가를 불허하면서 시작됐다. 제주도는 직업안정법을 근거로 복수노조 설립 시 노무인력 과잉 공급으로 고용 불안이 우려되고 노조 간 경쟁으로 항만 물류 작업이 불안해질 수 있다며 거부했다. 그런데 1·2심 재판부는 노무 공급권에 대해 두 노조를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위배되고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국내 노조 중 항운노조는 유일하게 클로즈드 숍(closed shop)으로, 소속 조합원이 아니면 하역작업을 못 하도록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노동자들은 대개 회사에 입사한 후 노조 가입을 선택하는데 항운노조는 노조에 가입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

▲판결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하역비와 노임을 줄일 수 있어서 물류비 절감에 기여할 것이라는 반응과 함께 ‘노-노’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 인맥 위주로 형성된 거대 집단의 관행이 깨질지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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