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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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형사가 재벌의 아들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재벌 측에서는 사회복지사인 형사의 아내를 불러내 명품가방에 거액의 돈다발을 넣어 건넨다. 형사의 부인은 주위 사람들이 보란 듯 가방 속 돈다발을 꺼내 보이며 “우리 복지관에서 장애인 체육행사 때 후원을 해달라고 그렇게 괴롭혀도 들은 척 안 하더니 이건 뭐 1년 행사비로 써도 되겠네”라며 면전에서 망신을 준다. 그리고는 남편이 근무하는 경찰서로 찾아가 이 일을 얘기하며 “내 앞에 명품가방하고 돈다발이 올려지니까 흔들리더라 우리 부끄럽게 살지 말자”고 한다.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이다.

명품가방과 돈다발 앞에서 흔들린 그녀를 지켜 준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누구보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만이 갖는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래서 영화 속 형사인 남편은 이런 명대사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최근 몇 년 사이 사회복지 공공성 강화 정책을 설명하는 공청회나 토론회 자리에 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공공성’을 부각하기 위해 민간 사회복지 현장을 폄훼하거나 불신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공공연하게,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경우가 그것이다. 민간 법인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공성’을 부정하고 사회복지시설 운영을 돈벌이 수단으로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 정책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반대하는 이유를 ‘밥줄’과 ‘밥그릇’에 빗대 빈정대는 중앙부처 공무원이 있었는가 하면, 장애인 거주 시설 자체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살아선 안 되는 곳처럼 묘사하는 대학교수도 있었다. 어느 토론회에서 만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지금까지 내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누군가의 삶을 돕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분의 얘기를 들으면 사람으로서 못 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사회복지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률과 갖가지 지침들을 숙지하고 매년 수십 시간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지시에 따라야 함은 물론 시설 운영 법인의 감사와 이사회, 운영위원회를 통한 관리와 통제는 일상처럼 이뤄진다. 3년마다 사회복지시설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도 있다. 대다수의 정상적인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도무지 ‘공공성’을 외면할 수 없고, ‘전문성’에 소홀할 수 없으며, ‘인권’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현장 최일선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이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발언들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행태에는 불편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설득을 위해서는 긍정과 존중이 바탕 되어야 한다.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복지 현장의 여러 이슈를 다루는 당사자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지점이다.

마침 사회복지계 대표기관이라 할 수 있는 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사협회의 중앙과 제주지역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11월과 12월에 연이어 있다. 제발 바라건대 오늘도 이 악물고 사회복지 현장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회복지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이가 선택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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