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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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1970년대는 학생은 많고 시내버스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만원버스가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가려면 제주시 삼양에서 버스를 타고 화북~여상~동문로터리~중앙로~남문로터리~광양사거리~오라오거리~신제주로터리 등을 거쳐야 했다.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내가 탄 시내버스에는 오현중·고생, 제주여상생, 중앙여중생, 제주일고생, 중앙중생, 제주농고(현 제주고)생을 비롯해 직장인이 함께했다.

등·하교 때는 늘 만원이다 보니 몸이 작은 친구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맘고생이 심했다.

시내버스 내 정원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무조건 학생이나 일반시민을 많이 태워야 돈을 많이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이런 냄새 저런 냄새와 함께 압박이 심했다.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압박을 처음으로 느낀 때였다.

▲두 번째로 압박을 느낀 때는 신병교육훈련단에서 화생방 훈련을 받을 때였다. 가스실에서 방독면을 벗은 후 군가를 불렀다. 이후 동료들이 괴로워하며 가스실 입구로 몰렸다. 서로 먼저 가스실을 빠져나가려고 몰려든 것이다. 문은 열리지 않은 상태여서 사람들 사이의 압박이 심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 압박까지 이뤄지니 참담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의 압박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압박 때문에 155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가 일어났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서다.

수만 명이 특정 시간에 특정 지역으로 몰리면서 일어났다. 이곳은 폭 3.2m, 길이 40m 가량의 경사진 골목길이다. 이런 곳에 인파가 몰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압박에 의한 질식 등으로 숨진 것. 특히 희생자 155명 중 남자가 55명, 여자가 100명인 것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와 약한 힘 때문에 여성의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길 어떻게든 해주세요. 진짜 사람들 죽을 것 같아요.”

이날 위험을 느낀 시민들이 11번이나 경찰에 112 신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찰과 자치단체 등은 뭐했는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사고 이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공직자가 할 말인가.

이러니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게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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