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아픔이 글과 그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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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팔순 강양자씨, 평생의 상처 담은 '인동꽃 아이' 펴내
"달구지 타던 아이 이제 없지만, 추억은 내 삶의 원천이 됐다"
'인동꽃 아이' 삽화를 그리고 있는 강양자씨.
'인동꽃 아이' 삽화를 그리고 있는 강양자씨.

‘코흘리개 손을 잡은 만삭의 여인이/왜 방향도 모른 채 달아나야 하고/왜 총을 맞아야 하는가/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아무런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지금도 이유를 모른 채/동백꽃보다 더 붉은 피멍을 토하며/두견새처럼 울부짖었던 그 날/죄라면 오직, 가진 것 배운 것 없어도…/우물 샘 마시며 산 것이 죄란 말인가’(시 ‘우물 샘 마시며 산 죄’ 중에서)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처럼 4·3의 아픔을 지닌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삽화로 그려보고 싶었다. 유년 시절, 천진스럽게 뛰놀았던 그 풍경이 그립고 보고 싶다. 달구지 타고 풀꽃 들고 서 있던 아이는 이제 없지만, 추억들은 지금도 내 삶의 원천이 되어 나를 지탱하게 해준다.”

올해 팔순의 강양자씨가 자신의 생애를 담은 그림 에세이 ‘인동꽃 아이’를 펴냈다. 1부 ‘제주 산촌의 추억’, 2부 ‘4월의 아픔을 등에 지고’, 3부 ‘그리운 사람’, 4부 ‘4월의 인사’, 5부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로 구성됐다.

평화로운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부터 평생의 상처가 된 제주4·3, 그리고 아픔을 딛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출판기념회와 그림전시를 앞둔 7일 강씨는 “몸과 마음에 4·3의 아픔이 새겨진 채 평생 집안에서만 살아왔다”며 “노년에 이르러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닫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씨는 “어린 시절의 조그만 아이가 수없이 던지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며 “나는 팔순이 된 지금도 여전히 제주4·3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씨는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종전 직후 부모와 함께 제주로 귀향했지만, 강씨만을 남겨두고 부모는 일본으로 밀항했다. 외가에 맡겨져 7세 때 4·3을 겪었다.

외가 식구들은 제주4·3으로 모두 희생됐고, 강씨는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다 돌무더기에 등을 다쳐 평생 등이 굽은 채 살아왔다. 그러나 강씨는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했다. 장애를 인정해줄 친인척을 제주4·3으로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낯선 사람을 보면 두려움에 움츠러들었지만, 강씨에게는 고마운 인연이 있다.

강씨는 “굽은 등 때문에 늘 힘들었는데, 이제윤 선생님을 만나 요가를 배우게 된 지 어느덧 3년”이라며, “책을 발간하고, 그림을 그리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이자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편 ‘인동꽃 아이’ 출판기념회는 10일 오후1시 제주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리며, 삽화로 꾸린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그림전도 10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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