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과 우주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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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 논설위원

지난 9월 96세로 70년 재위를 마친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의 운구차가 웨스트민스터 홀로 이동할 무렵 몰려온 참배객들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템스강을 따라 서더크 공원까지 8㎞ 줄로 늘어서서 10여 시간씩 기다렸다고 했다.

1953년 6월 즉위할 때 국민들은 여왕이 옛날 엘리자베스1세나 전 시대의 빅토리아 여왕처럼 영국을 다시 전성기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했으며, 세계대전 후 영국의 대외적 위상회복과 국내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처칠 수상의 의도로 대관식이 아주 화려했다고 한다.

16세기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국교로 종교를 통일하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찔렀으며, 인도에 동인도회사와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설립하여 영국의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 아버지 헨리 8세와 어머니 앤 볼린은 또 얼마나 역사적으로 생생한 인물들인가. 수장령을 내리면서 이혼한 헨리 8세는 앤과 결혼했지만 3년 후 그녀를 처형하였으니 권력과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여왕은 나라의 흥망성쇠라는 긴 그림자를 끌면서 국민에게 장구한 세월 동안의 권력 쟁탈과 인간 심리를 함축하니, 자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별처럼 멀고 달처럼 아름다운 존재이면서 표현할 수 없는 오래된 꿈을 상징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한 마음으로 모이게 하는 존재는 사람만이 아닌 듯하다. 한 예로 2011년 3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임무를 마치고 박물관으로 옮겨질 때 그 광경을 보려고 워싱턴 DC에 운집했던 대중들이 있다. 1984년 8월 30일~9월 5일 최초비행을 한 디스커버리호는 2011년 2월 24일~3월 9일 최후 비행을 했다. 그 동안 수행한 임무는 39회. 우주 정거장으로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들은 252명, 우주 체류 일수는 1년 12시간 53분 34초, 지구 주회 횟수 5830회, 총 비행 거리 2억3853만9063㎞라니 경이롭지 않은가.

디스커버리호는 연구 및 국제 우주 정거장 조립 임무와 허블우주망원경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 사용되었다. 우주에 처음 올린 허블우주망원경은 1990년 4월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지구 상공 600㎞ 궤도에서 지상 관측보다 50배 이상 별들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했다. 이로써 130억년의 장구한 우주의 시간 속에 3만 년의 ‘찰나’를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가 우주의 시공간을 들여다보았으니,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가 더 이상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한 지 약 400년이 지난 시점이다.

디스커버리호가 박물관으로 옮겨진지 10여 년이지만 아직도 그 우주왕복선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주 궤도를 탐사하고 우주비행사들을 싣고 우주 정거장을 왕복하던 하나의 기계이지만 비행사들에게는 그 시스템 작동이 생명체처럼 여겨졌고, 우주를 드나들며 입은 표면의 상처에 일반 사람들은 마치 영웅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류의 연구와 우주 진출 과정에서 희생된 우주비행사들,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될 우주 식민지 건설, 이런 염원을 담아 어둡고 먼 우주로 나가는 인류의 정찰병 같은 우주왕복선이 자신을 희생하며 인류에 봉사하는 존재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삶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상에 목이 마르고, 의미심장한 신비를 발견하면 말로 다 못할 충성심에 뼈가 가루가 되어도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려는 성향이 있다. 주변에 그런 대상이 있을 때 삶은 복되고 충만해진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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