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밤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양재봉 수필가·시인

읍내 한적한 곳에 집을 마련했다. 제주시에서 가깝고 일주동로인 큰 도로를 지척에 두고 있으니 교통도 편리하다. 차도와는 분리된 널찍한 자전거 도로가 있어 더욱 좋다. 아직 개발이 활발하지 않아 주변엔 인가가 별로 없다.

텃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짬을 내어 서예, 수필, 시를 쓰거나 책장을 넘겨왔으니 여유로운 삶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자전거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시골길, 자드락길, 돌담길, 오솔길 이름을 붙여가며 산책을 즐겼다. 어스름 내리는 길을 아내와 함께 손잡고 거닐면 더 좋고 강아지와 함께 걸어도 행복한 느낌이 든다. 밤길을 나서 산책할 땐 어둡긴 하지만 나름 시골이란 이런 것이라며 만족해했다. 아내도 홀로 산책을 즐기기도 하는 그 길을 우리는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요즘은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두려움을 가슴에 들이고 발길을 끊고 말았다.

초등학교 동창생 Y가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 300m 쯤 되는 곳 농막에서 지낸다. 그에게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돌담이 정겨운 길이다. 오토바이로 거리를 재보니 500m가 조금 넘는다. 인가가 별로 없으니 가로등도 몇 개 되지 않지만 산책으로 익숙한 길이 되어 불편함은 전혀 없다. 홀로 밤길을 걸을 때면 여름엔 반딧불이 인사하러 나오고, 가을엔 귀뚜라미가 노래 부른다.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 속에 족제비도 돌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인사하는 자연이 살아있는 곳이다.

그와 만나 바람과 달빛도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면 신선이 따로 없다. 농막 내부를 향나무로 둘렀으니 은은한 그 향기도 심신을 평화롭게 한다.

얼마 전 그가 부르기에 달려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하는 말을 듣곤 소름이 돋았다. 입동을 지난 찬 냉기가 더하여 옷깃을 여미게 했다.

“어제는 L과 소주잔을 기울이다 자정이 다 되어 농막으로 향했네. 과음은 아니었지만, 취기가 있어 누가 봐도 걸음걸이가 흔들리고 얼굴도 불콰했을 것이네. 일주동로에서 보행 신호등을 받고 길을 건너 골목길로 들어섰어. 차 한 대가 신호등이 바꿨는데, 가지를 않고 있다가 내 뒤를 슬금슬금 따라오는 거야. 차 안엔 남자 셋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어.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큰길로 나가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어. 그 차는 담배 한 대 다 타도록 기다리더라. 내가 움직이지 않자. 저만치 가다가 돌아오기를 서너 차례 하는 거야. 그들을 향해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으며 전화를 거는 흉내를 내자 굉음을 내며 사라졌어. 그 후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네. 그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골목길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그 길에서 산책을 즐긴다 하지 않았는가, 늦은 시간엔 삼가시게. 특히 아주머니 홀로 산책은 위험하단 생각이 드네. 무서운 세상 아닌가. 아마 그들은 술 취한 사람을 노리는 자들이거나 납치범이라는 생각이 들어.”

밤길만이 아니다. 며칠 전 보도에선 제주도에도 마약사범이 많아졌다고 한다. 누가 건네는 사탕 하나도 의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보내온 사람이 불분명한 택배는 열어보지도 말라 한다. 사건 사고가 부쩍 잦고 강력 사건도 흔해졌다.

노약자와 여성들이 더욱 위험에 노출된 사회가 아닌가. 조심해서 해될 것 없으니 밤길은 우리 모두 미연에 조심 하자. 정부도 국민이 마음 놓고 밤길을 다닐 수 있게 치안에 더욱 힘을 썼으면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