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언영색(巧言令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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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논어 학이편과 소학의 해로운 벗 셋 중 하나로 언급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이란 뜻이다. 논어는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많이 읽혀 왔고 지금도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정리했지만, 우아하게 잘 정돈된 책이 아니다. 스승이 농담 삼거나 실수한 것까지 실렸는가 하면, 혼잣말이나 제자들끼리 주고받던 얘기도 섞여 있다.

사실, 논어를 절대 진리인 양 달달 외워 봤자 시대와 괴리된 부분이 적지 않다. 말도 잘할 필요가 있거니와 겉모습 또한 비즈니스 관계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므로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이 말을 입에 올리며 분명히 할 것은, 말하고 꾸미는 자의 마음자리를 제대로 짚는 일이다. 쉽지 않을 것이나, 이 부분이 핵심이므로 간과해선 안된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낯도 잘 바꾼다면 공자가 말한 소인배요, 극단적으로는 사기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 중에는 인(仁)한 이가 드물다.” ‘교(巧)’는 교묘하다, ‘영(令)’은 아름답다는 의미다. 묘하게 말하거나 겉모양을 부러 꾸미는 사람 가운데 인(仁)한 자가 없다 한 것이다. 흡사 미사여구로 꾸며 놓은 미문(美文) 같아서 속이 텅 비어 있음을 짚어냈다. 진실이 담기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하지만 말과 겉모습은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해 중요한 것이다.

권력자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삼가고 낮추게 마련이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인데 자신을 잘 보이려 다가갈 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의 교언영색은 행태가 지나쳐 낯 뜨거울 지경이다. 듣는 사람이나 말하고 꾸미는 사람이나 잘 주고받으니 실은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옛말을 끄집어내야 할 것인가.

대놓고 말하건대, 외국 순방길에서 돌아오는 대통령을 마중하는 자리에서 카메라에 비친 어느 장관, 말은 귀엣말이라 잡히지 않았으니 모른다. 한데 그 표정이 무언가. 조금 전까지 지녔던 안면의 평온이 삽시에 무너진 그 얼굴이라니. 그래야 장관을 하는가. 대통령도 그더러 “고생하셨다.” 하는 걸 국민이 보고 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을 잃은 끔찍한 참사, 그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에게 할 말인가. 국민 정서에 안 맞다.

요즘 한자리 하고 있는 분들, 믿는 구석이 있어선지 모르나 언행이 도를 넘어 비난을 받는 건 아닌지 여간 염려스럽지 않다. 말은 국민을 시종 입에 바르면서 진작 내놓아야 할 민생에 대한 실질적 정책은 무엇인가. 무계획, 무정책인 것 같아 안쓰럽다. 그런데다 대통령의 지지율에만 집착하는지, 하는 일들이 국민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만 비치니 문제다. 정권이 들어서 반년인데 나라 어느 한 곳에 열어놓은 새 지평이 있기나 한가.

권력기관의 수장이었던 대통령이다. 엄중해야 한다. 무너지는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밤잠을 물려야 한다. 측근의 교묘한 말과 알랑대는 낯빛에 쏠린다면 뜻밖의 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잘하는 말과 교묘한 말은 다르다. 얼굴빛을 꾸미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로되, 명품으로 감싼 자의 내면은 참 허하다. 팔순 노인, 공자의 인(仁)을 생각하시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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