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나누는 정치, 데모크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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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그 어원은 “민중(demos)의 권력(kratos)”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자유주의(liberalism), 보수주의(conservatism)와 같이 ‘주의(主義)’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데모크라시즘(democracism)이 아닌 데모크라시(democracy)로 표기한다.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이라기보다는 귀족정치(aristocracy)나 독재정치(autocracy) 등과 같이 주권자가 권력을 실현하는 작동방식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언제, 어떻게 보아도 가슴이 벅차다.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헌법 제1호에서 제1조와 제2조로 나뉘어 있던 것이, 제3공화국이 출범한 헌법 제6호에서부터 제1조로 합쳐졌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선언은 자랑스럽고, 그래서 든든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기술관료제(technocracy)의 문제점과 직면하고 있다. 기술관료제는 “현대의 과학기술과 관료제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효율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문가를 관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이다. 그런데 효율성이 인간의 가치보다도 앞서게 되어서 전문가의 권위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민주정치의 이념을 잠식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인의 정치는 마음을 비우지만 배는 든든하게 하고, 뜻을 약하게 하지만 뼈는 강하게 한다. 언제나 백성들이 알려고 하거나 욕심을 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감히 어떤 것도 할 수 없도록 한다. 어떤 것도 하지 않음을 해내기 때문에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노자는 기술관료제 탓에 우리가 직면하게 된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식과 욕심이 인간의 생산능력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목적이 인간이 아닌 효율성 또는 생산물에 두어질 때, 수단과 목적이 전도하는 현상, 곧 인간이 수단화되는 인간소외가 일어난다. 그렇게 해서 기술관료의 전문적인 판단에 기대고 의지할수록 역설적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된다.

“어떤 것도 하지 말라”는 노자의 역설(逆說)은 역설(力說)이다. 모순이 아니라 강한 신념을 담은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배를 채우고 뼈를 강하게 하는 것, 곧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무언가 근사한 것을 하겠다는 마음은 미리 비우고, 제 뜻대로 해야 한다는 고집도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들이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라틴어 demo는 덜어내고 나눔을 뜻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한 성인의 “하는 것이 없지만 잘 다스려지는” 정치는 권력을 덜어내고 나누는 민주정치와 잘 어울린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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