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와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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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조선 시대 제주로 온 유배 인물 중에 보우 대사(1509~1565)가 있다. 조선 명종 때 큰스님으로 왕의 모친인 문정왕후(1501~1565)의 신임이 두터웠다. 1548년(명종 3) 때 당시 불교의 총본산으로, 지금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의 주지를 맡았다.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 속에 불교 부흥을 위해 승과(僧科) 제도를 부활하고, 휴정(서산)과 유정(사명) 등과 같은 고승을 발탁했다. 이로 인해 사대부와 유생들의 미움을 샀다. 처단하라는 상소문이 수백 건에 달했으나, 열렬한 불교 신자이며 당대의 최고 실력자인 문정왕후가 있었기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왕후가 죽자 그해 제주로 유배됐다가, 제주 목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대사의 순교를 기리고 명예 회복을 위해 1991년 ‘허응당 보우 대사 순교비’를 조천읍 조천리 고관사 경내에 세웠다.

▲봉은사는 794년 신라 원성왕 때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유서 깊은 사찰인 만큼 보물 2점을 비롯해 40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일반인에겐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거쳐 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한 신문 칼럼에서 봉은사를 ‘서산·사명 같은 걸승의 요람이자 불교 중흥의 도량’이라고 썼다.

이 절의 트레이드 마크는 판전(板殿)이다. 부처님 말씀을 새긴 경판 3500점이 봉안돼 있으며, 특히 제주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가 쓴 큼지막한 편액이 걸려있다. 추사는 말년에 봉은사 선불당 옆 작은 초가에서 2년 가까이 지냈으며 봉은사 ‘판전’ 현판을 쓴 후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한승원씨의 장편소설 ‘추사’에는 “대감의 휘호여야만 경판들이 만세에 길이 전할 것입니다”라는 주지 스님의 부탁을 받고 ‘판전’이란 두 글자에 불을 억제하고 물을 맡아 다스리는 하백(河伯·전설상의 수신)의 혼이 담겨있어야 한다며 고뇌하는 추사의 모습이 담겨있다.

▲제주와 인연이 깊은 봉은사에서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제주 감귤 소비 촉진 행사가 진행됐다. 사찰을 둘러싼 우거진 숲으로 도심 휴식 공간의 역할도 톡톡히 하는 곳이라 불자 외에도 많은 시민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주지 원명 스님은 “제주에 유배됐던 보우 대사를 재조명하는 데 제주도가 큰 역할을 했다”며 고마워했다.

감귤이 제주와 봉은사의 역사·문화 교류 협력의 비타민으로 작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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