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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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아침저녁으로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그 따스함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핼러윈 축제를 보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든 인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인의 유족들이다.

하루아침에 하늘나라로 떠난 자식을 생각하며 힘겨워하는 어느 엄마의 가슴 절절한 편지가 에스엔에스에 올라왔다. “아들아, 너는 그리 추운 곳으로 갔는데 내가 어찌 따스한 밥을 먹을 것이며 따스한 잠을 잘 수 있겠니. 엄마가 곧 만나러 갈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사랑한다.” 이 심상치 않은 글을 본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위로의 댓글을 쏟아냈고 힘내시라고, 용기를 가지시라고 온 마음으로 엄마를 응원했다.

도대체 어떤 골목이었기에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됐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구조를 확인하고자 길을 나섰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역에 내렸다. 출구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연기 향이 코끝을 스쳤다. 감정이 복받쳐 왔다. 출구에 도착하니 추모객들이 올린 국화꽃은 이미 쌓여 산이 되었고 눈물로 바다가 된 도시는 슬픔에 잠긴 듯했다. 거대한 인간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그 시간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겠는가. 허무하게 스러진 영혼처럼 빛바랜 도시가 황량하기만 했다.

고인을 위로하는 향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허공을 배회하던 새들마저 잠시 분향소 위를 비행하더니 이내 흩어진다.

나는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영정사진도 없는 분향소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들어가는 입구엔 몇몇 경찰이 지켜 있었고 유족과 봉사단들이 추모객을 맞이했다. 분위기가 얼마나 엄숙하고 숙연하던지 몇 발짝 걸었는데도 다리는 돌을 매단 듯 천근만근이다.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뉴스에서 보도한 것처럼 사고 현장에는 불법으로 증축한 건축물이 골목 안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한 눈으로 봐도 위험해 보이는 구조다. 비좁은 땅에는 상가들이 빼곡했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마치 미로 같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스템으로 구조만 잘 이루어졌어도 이런 엄청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주변에 있던 혈소판이 달려들어 혈액의 흐름을 막아 피를 멈추게 한다. 하물며 생명을 다투는 응급 상황임에도 관계자들은 무엇을 했길래 꺼져가는 그 많은 호흡을 살리지 못했단 말인가.

사고가 났던 골목은 희생자의 분실물 보호를 위해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 하지만 그 앞 도로에선 고인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어떤 이는 맥주와 과자를 놓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꽃다발을, 어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메모지에 꾹꾹 눌러 담아 벽이며 바닥이며 정성스럽게 붙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내 가족일 수도 있었다 생각하니 말없이 찾아오는 시민들의 따스한 마음에 가슴이 더욱 메어왔다.

고인을 위한 진정한 애도는 참사의 원인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랫말이 있다. 이제 모든 아픔을 잊고 천 개의 바람처럼 훨훨 날아 편안한 쉼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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