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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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 논설위원

조선의 마지막 충신 충정공 민영환이 45세 때입니다. 늦게 자식을 얻으면서 일곱 살 맏이부터 그해 태어난 아이까지 5남매를 뒀지요. 아내와 혈육을 남기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해 1905년 11월 30일 새벽에 일어난 일입니다.

11월 17일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그 후 199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 정부 기관인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지요.

광무 9년인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으로 한국과 일본이 을사늑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늑약(勒約)이란 억지로 맺은 조약입니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 장악을 위해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지요. 명목은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삼는 것이라 하지만, 실은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식민지를 만들려는 야욕입니다. 을사늑약의 체결로 일본은 한국에 식민지에 준하는 통치와 수탈을 자행합니다. 이때부터 안중근 의사(義士)와 유관순 열사(烈士) 같은 분들이 많이 나옵니다.

국가보훈처의 정의에 따르면, 의사는 성패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어 무력으로 적에게 거사를 결행한 사람. 열사는 직접적인 행동 대신 강력한 항의나 목숨을 바쳐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인 분이라 합니다. 국가보훈처는 의사와 열사 모두 독립유공자로 예우합니다. 1945년 8월 14일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항거, 순국한 자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독립을 염원했으나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분들입니다.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신 분입니다. 지사는 생존한 이들에게도 붙일 수 있는 명칭이지요. 호국영령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로,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국군 장병들을 지칭합니다. 넓은 의미로 순직한 경찰관이나 소방관도 이에 포함됩니다.

순국선열의 날과 현충일 기념일은 해마다 열립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기념식’이며, 현충일은 ‘추념식’으로 표현합니다.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는 마지막 순서로 참석자들이 모두 ‘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는 반면, 현충일에는 오전 10시 정각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모든 국민이 1분간 묵념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일항쟁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는 항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제하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것에 대해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 지배하에서 빼앗겼던 자유와 인권을 되찾고자 한 분들입니다. 오늘날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고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지요. 그분들의 대일항쟁이란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조국 독립’이라는 목표 하나로 평생을 바친 순국선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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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아빠 2022-11-30 21:53:22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소정공주 2022-11-30 20:24:49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