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변주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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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12월 달력 한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벽에 걸려 있다. 사라져가는 한 해의 뒷모습이 애련하다. 세월의 강에 떠밀리며 나의 삶도 흘렀으니 이제 조용히 갈무리할 때인가 보다.

일에 매달리던 선대들은 아플 겨를도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에 비해 이젠 제법 여유롭지만 사는 게 심심하고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몰입하는 활동의 부재 탓이 아닐까 한다. 다행히도 나는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은 별로 없다. 한두 줄 읽고 쓰느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리란 강박관념으로 낮잠을 자더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공통적인 소망은 건강한 삶일 것이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으로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대체로 잘 관리되는 편이다. 괴롭게도 지난달엔 메니에르병이 도져 어지럼증과 대판 싸워야 했다. 여러 날 약을 먹고서야 서서히 꼬리를 감췄다. 평소에도 빈혈 수치가 낮아 가끔 현기증이 일곤 하는 터라, 끼니마다 깻잎을 약처럼 먹고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만큼 명약은 없다. 오늘이 내게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일 것이다. 그래서 식사 후 하루 세 번 걷기를 한다. 만 오천 보쯤 된다. 서서히 2만 보로 늘릴 생각이다. 아울러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식후 과일 먹는 걸 피하고 식전에 먹거나 식간에 먹는다. 식후 과일을 먹으면 위에서 미리 먹은 음식물과 혼합되어 부패하면서 독소가 생긴다는 말을 들어서다. 10여 일 실행하는데 몸 상태가 좋아지는 느낌이다. 어려운 일 아니므로 권해볼까 한다.

따뜻한 햇볕을 쬐노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며 마음에 온기가 돈다. 무심히 마당을 서성이며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저마다 개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잎을 붉게 물들인 낙엽수는 화살나무, 흰 꽃 배롱나무, 섬개야광나무 정도다. 이름이 무색하게 단풍나무는 잎이 누렇게 변색할 뿐 제일 추한 모습이다. 산속에서 자랐더라면 고운 자태를 뽐냈으련만. 잎을 떨구는 시기나 모습이 저마다인 것으로 보아 자연은 다양성으로 세상을 어우러지게 하는 게 목표일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카타르 월드컵이 볕뉘처럼 가슴의 창을 비추지만, 아무래도 세계와 국가의 정세가 암울하다. 어느 하나 기대를 걸 만한 게 없는 듯하다. 빗대어 옛날에 읽었던 우스개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수한 두뇌를 이식한다는 소식을 들은 만득이가 병원을 찾아가 가격을 물었다. 의사는 10g당 기사의 것은 100만 원, 변호사의 것은 500만 원, 의사의 것은 1000만 원이라 했다. 그러면서 1억 원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누구의 두뇌냐고 물었을 때 국회의원의 것이라 한다. 비싼 이유를 물어보니, 그 두뇌는 별로 사용한 적이 없어 새것이나 다름없을뿐더러 좀처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나.

민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밤샘해도 모자랄 판에 허구한 날 정쟁으로 악다구니라니. 국민의 눈은 예리하다. 상대의 단점을 밟고 올라서려 말고, 자신의 장점을 발휘해 비교우위에 서려고 노력하면 좀 좋으련만,

인간의 삶에서 춥고 배고픈 것처럼 서러운 게 또 있을까. 복지의 손길이 구석구석 살피길 바라며 일상을 일으키는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여, 가녀린 어둠의 신음을 빛의 소리로 변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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