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민들레의 약속
착한 민들레의 약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민들레는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꽃대 몇 개를 쑥 올린다. 푸르죽죽한 톱니 모양의 잎새와 눈에 확 들어오는 샛노란 황금색 꽃이 인상적이다. 꽃이 지고 나면 솜털 같은 씨앗들이 바람 타고 날아 널리 퍼진다.

향기가 있다. 꽤 구수하지만 꼬릿꼬릿해 탐할 정도는 아니다. 민들레에서 놀라운 것은 강인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이다. 강인하다, 질기다는 형용사론 표현이 모자라게 어마어마하다. 몸체는 튼튼하고 땅속으로 깊이 뿌리 박아 뽑기가 어렵다. 파고 보면 굵직한 뿌리가 개체의 삶을 온전히 감당해 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제초제에도 잘 죽지 않은 맹렬한 종이다. 오가는 행인의 발길에 밟히는 정도로는 끄떡도 없다. 뿌리를 몇 동강 내어도 싹이 트는 풀이니, 그 지독한 생명력을 짐작할 만하다. 보도블록이나 아파트 난간의 한 줌 먼지 틈에서도 한자리 튼다. 심지어 예초기 날이 지나도 금세 파릇파릇 돋아난다. 민들레에게 노지 월동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단을 만드느라 공들여 수고로울 것 없이 작은 민들레 꽃밭을 만들면 된다. 비탈진 자드락에도 억세게 뿌리 내리는 풀. 흙을 북돋우고 거름할 필요 없이 심어두면 새봄에 솟아나는 싱그러운 풀, 바로 이어지는 샛노란 꽃의 군락은 얼마나 찬연한가. 웬만하면 죽지 않고 이어지는 녀석을 가꿔 노란 민들레밭을 끼고 앉아 차 한잔하면 좋으리라.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는 풀이 잡초다. 농작물이나 다른 식물이 자라는 데 해를 끼치기도 한다. 영역 침해라 한다. 하지만 그 영역이라는 건 사람이 생각일 뿐, 도대체 정한 기준도 아니다. 산과 들에 무심히 살아 자라는 풀, 잡초는 사람이 재배하는 풀이 아니라는 뜻이지 특정의 풀을 식물 종류로 분류하듯 붙여 놓은 말이 아니다. 농작물은 인간과 공생관계지만 잡초를 농작물을 해친다는 이유만으로 내몰아선 안된다.

잡초도 없어선 안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땅을 섬유화시켜 표토층을 보호하는 막중한 구실을 한다. 기후가 건조한 미국 텍사스 한 과수원이 잡초로 골머리를 앓게 되자, 아예 씨를 말렸더니 극심한 토양 침식과 모래바람으로 몇 년 치 농사를 망쳤다 한다. 넘겨짚어 불러들인 재앙이었다.

역경을 견디며 생긴 깐질긴 사람의 내성을 ‘잡초 같은 인생’이라 빗댄다. 근기 때문인지 꽃이 곱다. 달맞이꽃, 엉겅퀴, 제비꽃…. 민들레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민들레에 잔뜩 기울어 있다. 노란 꽃도 준수하지만, 탐닉하는 것은 꽃이 시든 뒤 맺는 하얀 씨앗이다. 무심한 눈길을 꺼당기는 그것은 예사로운 씨앗이 아니다. 씨알 하나하나에 깃털을 달고 있다. 멀리 날기 위한 날개다. 살랑대는 미풍에도 날아가는 씨앗. 먼 곳으로 날아가 외로운 사람에게 내려앉아 노란 황금빛 세상을 약속해 줄 것 같은 상상에 부풀게 한다.

우리네 삶은 아직 힘들고 고단하지만, 나날이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민들레의 약속을 믿어야 할 게 아닌가. 약속은 책임이고 책임은 믿음이라는 언어다. 행여 그 약속이 당장 눈앞에 실현되지 않는다고 성급하게 속 끓이거나 실망하지 말 일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곤경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의 노란 꽃, 그 뒤의 하얀 씨앗의 날개 그리고 그것을 날게 하는 바람이란 우주의 협동. 자연을 믿어야 한다. 착한 민들레의 약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