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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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매년 날이 차가워지면 신고식처럼 겪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힘들었다. 예년 같으면 하루 정도 푹 쉬면 됐을 일을 올해는 사흘씩이나 끙끙 앓아야 했으니 말이다. 온몸을 두들겨 맞는 듯한 근육통, 오한과 기침은 온몸의 기력을 빼앗으며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이런 남편이 딱해 보였는지 아내는 밥상을 차려 놓고 식사라도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냐며 일어나보라고 한마디 했는데, 이 미련한 남편은 어린애처럼 짜증 내며 몇 마디 쏘아붙이고 말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불꽃 튀기는 대화가 길어졌을 일이지만, 상대가 워낙 형편이 안돼 보였든지 아내가 긴 한숨으로 카운터펀치를 대신했다.

이런 위기일발의 상황을 지켜보던 막내아들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한마디 한다. “아빠, 오늘 엄마 생일이에요.” 순간 근육통의 통증이 열 배 이상 더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말 한마디만 잘했으면 생일상 차려주지 못한 미안함과 남편 챙겨주는 감사함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보란 듯 날려버린 꼴이 되었다. 저녁상에 케이크 하나 올려놓고 축하라도 받을 줄 알았던 자신의 생일날 끙끙 앓고 있는 남편을 위해 밥상을 대령해 놓고서도 핀잔까지 들어야 했던 아내는 더욱 기가 막혔으리라.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고맙게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는 함께 일하다 퇴사한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러 줄 때다. 근황을 얘기하며 옛날 함께 근무했을 때 기억을 나누다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더 잘해주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특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내 말 한마디에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 놓기라도 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그랬을 리 없다며 부인을 해봐도 돌 맞은 사람의 기억이 더 정확한 건 진리가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식은땀 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문서의 단어 하나 갖고 핀잔을 주거나, 전화응대 태도를 갖고 닦달하거나, 늦어지는 보고에 면박을 주는 일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필요하지만, 내가 전달한 말에는 그런 의도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상처를 남겼을 뿐.

“저는 아우슈비츠의 몇 안되는 생존자 중 한 여성에게 배웠습니다. 그녀는 15살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면서 8살짜리 남동생과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됐어요. 왜 그런 것 하나 변변히 챙기지 못하니! 라고 화를 냈지요. 불행히도 이게 동생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동생을 다시 볼 수 없었거든요. 살아남지 못해서요.’ 그녀는 말했어요. ‘아우슈비츠를 빠져나오면서 맹세했습니다. 혹여 일생의 마지막 말이 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말만 하겠다고요.’ 가능할까요? 아니요. 물론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을 겁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리더십 강연으로 유명한 벤자민 잰더가 ‘테드(TED)’ 강연에서 전해 준 얘기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된 듯하다. 지금부터라도 당신 앞에 있는 이에게 부끄럽지 않을 말, 후회되지 않을 말만 하겠다고 다짐해 보는 건 어떨까? 분명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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